이실근 일본 히로시마 조선인피폭자협의회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90세.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격의 피해자이면서 평생을 조선인 피폭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본 정부와 당당하게 맞섰던 인물이다.
26일 히로시마 지역매체인 주고쿠신문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 오후 히로시마시에서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30년 넘게 시민단체를 이끌며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수년 전부터 고령에 건강 문제가 겹쳐 외부 행보를 자제해 왔다. 김진호 히로시마 조선인피폭자협의회 이사장은 “최근 1년 동안은 지병이 악화해 입ㆍ퇴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1929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재일조선인 2세다. 미군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을 목표로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다음날인 1945년 8월7일 고베에 갔다가 귀가 도중 히로시마를 지나면서 피폭했다.
고인은 1975년 8월 재일조선인 최초의 피폭자 단체인 ‘히로시마 조선인피폭자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일본 내에서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효시로 꼽힌다. 성과도 적지 않았다. 일본인 피폭자 단체인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 등과 함께 ‘원폭피폭자원호법’ 제정을 이끌었다. 2차 대전 피폭자들에 대한 무상진료 및 수당지급 등을 규정한 법령이다. 또 일본 정부를 향해 줄기차게 남ㆍ북한 원폭피해 생존자 3,000명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 회장은 북한에 사는 피폭자 실태를 조사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10여 차례 북한도 찾았다. 반전ㆍ반핵 평화운동을 몸소 실천한 그이기에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내가 피폭자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공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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