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가짜 n번방 ‘함정’에 고교생ㆍ의대생ㆍ군인 등 줄줄이…

알림

가짜 n번방 ‘함정’에 고교생ㆍ의대생ㆍ군인 등 줄줄이…

입력
2020.03.27 01:00
수정
2020.03.27 16:56
8면
0 0

텔레그램 자경단 ‘주홍글씨’ 익명의 20명 디지털 성범죄 단속

n번방 찾는 이용자들 신상 공개… 범죄자 신원도 경찰에 넘겨

전문가들 “100% 합법 아니지만 예외적 함정수사 인정할 필요성”

미성년자 불법 음란물 구매자를 추적해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는 단체인 '주홍글씨'의 텔레그램 방. 텔레그램 캡처
미성년자 불법 음란물 구매자를 추적해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는 단체인 '주홍글씨'의 텔레그램 방. 텔레그램 캡처

“10대 고교생부터 대학생, 군인, 의대생까지… n번방인 것처럼 가장하고 만든 텔레그램 방에도 불법 동영상을 보겠다며 불나방처럼 몰려듭니다.”

‘텔레그램 자경단’을 표방하며 불법 음란물 이용자를 추적해온 ‘주홍글씨’는 디지털 공간에 함정을 파놓고 ‘n번방’을 이용하려는 미래의 범죄자들을 포착하는 단체다. 불법 영상물을 제시하며 ‘n번방’인 줄 알고 들어온 이용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한편 조주빈처럼 불법 비밀방을 운영하는 범죄자들의 신원을 추적해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이용자들이 제시한 불법영상물을 추적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도용당한 피해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주홍글씨 관계자는 26일 “지난해 7월 텔레그램에 함정방을 만들고 10개월 만에 300명의 덜미를 잡았다”고 말했다.

주홍글씨는 ‘n번방’처럼 불법 영상물 인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함정을 파서 이용자들의 덜미를 잡았다. 주홍글씨의 함정에 걸린 한 의대생은 자신을 소아성애자로 소개하면서 친조카의 사진을 흥정 수단으로 내걸었다가 성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지방의 모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는 화장실 불법촬영 사진을 제시하면서 다른 성착취 동영상을 요구했고, 대형 공기업의 한 직원은 항공사 승무원을 불법 촬영한 사진을 입장 대가로 제시했다가 주홍글씨에 덜미가 잡혔다. 주홍글씨 관계자는 “온라인 공간에서 성착취 동영상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거래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홍글씨에 덜미가 잡힌 이용자들은 일단 발뺌부터 하기 일쑤라고 한다. ‘불법 영상물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압박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맞대응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불법 영상물을 거래하기 위해 주고 받은 대화나 사진 등 증거를 제시하면 “자료를 지워달라”면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홍글씨가 운영하는 공식 텔레그램 방에는 ‘다시는 n번방에 안 들어가겠다’는 식의 반성문과 덜미가 잡힌 이용자들의 신상이 수두룩하다.

주홍글씨에서 디지털 자경단 활동을 하는 인원은 대략 20명. 활동 목적이 디지털 성범죄 단속이긴 하지만 함정수사와 같은 불법성을 부인하기 어려워 모두 신원을 숨긴 채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홍글씨 관계자는 “n번방 이용자들을 포착하는 과정에 불법 영상물을 미끼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100% 합법이라 할 수는 없다”면서 “음란물 공유방 운영자 등에게 보복을 당할 우려도 있어 비밀 활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홍글씨를 포함한 텔레그램 자경단 활동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조현욱 변호사(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는 “수사의 적법성에 따라 증거 배제가 되겠지만 은밀하게 진행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예외적으로 함정수사와 같은 방식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며 “경찰 혼자 하기에는 한도 끝도 없는 만큼 국민들이 이런 것들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SNS에 불법 음란물이 판을 치는데도 수사 당국은 기술적 한계를 들어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함정수사 방식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