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텔레그램으로 불법 촬영물ㆍ음란물 거래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 와치맨, 갓갓 등 관련 성착취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n번방은 어디에나 있다(nthroom be everywhere).”

미성년자를 포함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n번방 사건’이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등장한 문구입니다. 중국계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한국의 n번방 관련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는데요. 그러면서 “중국은 ‘91웹사이트’의 회원 명단을 공개하라(中国也请公91网站注册名单)”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에도 n번방처럼 불법촬영물을 거래하는 91웹사이트가 있었다는 겁니다.

중국뿐이 아닙니다. 인도, 싱가포르 등에서도 “우리나라에도 n번방이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요. 도대체 전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중국서도 “91웹사이트 회원 처벌을”
n번방 사건으로 중국에서도 불붙고 있는 '91웹사이트' 관련 처벌 여론. 웨이보ㆍ트위터 캡처

최근 국내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는 ‘91웹사이트 회원 명단을 공개하길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글의 조회수는 5,800만건을 넘어서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죠.

91웹사이트는 2년 전 영국 유학파로 상하이의 외국기업에 근무하던 남성 왕모씨가 2015년부터 2018년 초까지 해당 사이트에 여성 100여명의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한 혐의로 붙잡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사이트 회원들은 그를 신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다션(大神)’이라고 불렀고, 왕씨는 이를 통해 약 500만위안(약 8억7,000만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사랑이나 결혼 등을 구실삼아 여성들에게 다정하게 접근한 후 촬영하라”는 ‘비법’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중국판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2년 전 음란물 동영상 유포 사건으로 구속된 왕모씨가 “범죄인지 몰랐다”며 언론과 인터뷰 하고 있다. CCTV 캡처

한국 국민들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n번방 회원에 대한 처벌과 신상공개를 요구하고 나서자 중국인들도 뒤늦게 왕씨뿐 아니라 회원들까지 처벌해야 한다고 나선 겁니다. 웨이보를 중심으로 “범행에 동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회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네요. 또 ‘중국이여 깨어나라(China wake up)’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시작됐다고 합니다.

싱가포르, 인도서도 ‘텔레그램’ 음란물 공유
싱가포르 온라인 매체 아시아원(ASIAONE)이 지난해 보도한 텔레그램 불법 촬영물 및 음란물 공유방 ‘SG 나시르막’. 아시아원

중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싱가포르 온라인 매체 아시아원(ASIAONE)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는 4만6,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활동한 ‘SG 나시르막(Nasi Lemakㆍ말레이시아 전통음식 이름)’이라는 텔레그램 단체방이 적발됐습니다. 이 채팅방에선 여성들의 불법 촬영물이나 음란 동영상이 공유됐는데, 인기가 높아지면서 나중에는 1인당 30달러의 입장료까지 받았다고 하네요. 피해자의 사진을 텔레그랩 ‘스티커(이모티콘)’로 만들어 사용했다고도 하는데요. 피해 촬영물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대화창에 도배했던 n번방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싱가포르의 SG 나시르막은 한 트위터리안이 존재를 폭로, 참여자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면서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방을 만들고 운영한 37세의 주범을 비롯해 미성년자인 17세와 19세, 27세의 공범을 체포해 이들의 사진을 비롯해 이름, 신상정보를 공개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2017년 12월엔 인도 남부에 위치한 케랄라주에서 25세 남성이 체포됐는데요. 그는 텔레그램으로 소아성애 성향의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 채팅방에선 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피해자가 됐는데, 심지어 4살 아이가 대상이 된 영상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를 신고하려 해당 방에 잠입한 두 명의 사회운동가는 ‘접속 코드’를 얻기 위해 스와핑(배우자나 애인을 서로 바꿔 하는 성관계)이나 동성 성관계를 원한다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가해자들, 지구에 있는 한 반드시 잡힌다”
미성년자 등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를 일삼아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박사’로 불린 핵심 피의자 조주빈(25)씨가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인도의 공통점은 각기 수위와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n번방’이 존재했단 점만은 아닙니다. 이를 고발하려는 이들 역시 각 나라에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은밀히 이뤄지는 범죄일지라도 끝내 방을 찾아내고, 그들이 올리는 영상과 사진을 지켜봤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가해자들의 꼬리를 잡아채 세상에 알렸죠. 또 용기를 내 “내가 피해자”라고 밝힌 이들 덕에 사건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고 죄값을 치르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수사 당국의 n번방 사건 수사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피해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본 회원들까지 정면으로 조준하고 있습니다. 운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포에 가담하거나 교사ㆍ방조한 관전자들도 공범으로 간주해 엄중 처벌한다는 방침인데요. 국내 사이버 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최종상 사이버수사과장은 2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수사 격언이 있다”면서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가 안 된다, 어렵다고 하는데 오산이다. 당연히 수사가 된다”고 자신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텔레그램방 등을 통해 여전히 ‘n번방’ 영상이 팔리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또 다른 n번방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죠. n번방 사건을 이대로 분노로만 끝내선 안 될 이유일 겁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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