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2>척 팔라닉, ‘파이트 클럽’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파이트 클럽’의 한 장면. 20세기폭스 제공

‘진짜 남자’의 얼굴은 계속 바뀌어 왔다. 1950년대엔 외유내강의 존 웨인이었고, 1980년대엔 내면은 곧 깨질 것 같지만 강인한 근육질로 포장된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부르스 윌리스였다. 1990년대가 되면 ‘좋은 남자’ 톰 행크스가 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빅’(1988)에서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10대 소년 조쉬를 연기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어른의 몸에 갇힌 소년의 마음. 1990년대의 서막이었다.

현실과 달리 언론이 “여성의 시대”가 열렸다며 법석을 떨었던 이 시기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임신한 남자”(‘주니어’)가 되었고, 치명적인 무기(‘리썰 웨폰’)였던 멜 깁슨은 여자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남성 우월주의자’에서 벗어난다(‘왓 위민 원트’).

그리고 분노한 남자들이 등장했다. 페미니즘이다, 근대의 종말이다, 소비자본주의다, 하는 와중에 전통적인 남자다움의 가치는 쓰레기가 되었고, “아버지 같은 훌륭한 가장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미국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이 초조함을 포착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1996)이었다. 이 책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조차 아니야”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폭력을 통해서 스스로 무엇인가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보험회사 손해사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무기력한 회사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건 아파트에 쌓아놓은 유럽산 가구들과 먹지도 않으면서 쟁여놓은 고급 향신료들뿐이다. 한심한 건 물론 ‘나’만이 아니다. 모든 남자들이 “이젠 포르노 잡지 대신 이케아 가구 카탈로그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 한 문장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자의 노동과 남성성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소비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프레카리야트(임시직 등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 테러리스트 타일러 더든을 만나게 된다. 그는 ‘나’에게 “쓰레기 같은 나를 한 대 때려줘”라고 말하고, 둘의 첫 ‘파이트’가 펼쳐진다. 몸을 움직여 ‘남자답게’ 싸움을 한 판 벌인 후, ‘나’의 남성해방이 시작된다.

둘의 싸움은 점차 전파되기 시작하고, 미국 전역에 ‘파이트 클럽’이 결성된다. 이 클럽의 멤버들은 “여자의 손에서 길러진 남자들”이다. “허여멀건한 식빵덩어리”였던 그들은 형제끼리의 싸움을 통해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잃어버린 남성다움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타일러 더든과 파이트 클럽이라는 몸을 입는다.

하지만 폭력이 망가진 세계에 대한 대답일 리 없다. 더든은 사람간의 관계조차 프랜차이즈화되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대사회 테러인 ‘프로젝트 메이햄’을 구상하지만, 미국 전역에 조직되어 있는 클럽을 중심으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말을 하면서 똑같이 움직이는 이 똑같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 혁명이 아니라 폭력의 맥도날드화일 뿐이다.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전유하여 영화화한 데이빗 핀처는 이 남자들의 이미지를 통해 폭력의 한계를 강조한다.

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지음ㆍ최필원 옮김
랜덤하우스 발행ㆍ288쪽ㆍ1만1,000원

그리하여 미국(남성과 공명하는 전 세계의) 남성들이 2016년 트럼프 당선을 경유해 2019년에 도착한 곳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다. 구조에 무관심한 무기력한 개인으로서, 강한 자에게는 징징거리고 약한 자 위에는 군림하려는 비겁함 뒤에 숨어, 폭력의 퍼포먼스에 빠져드는 나르시시스트. 연약하고 물컹거리는 성기를 대체할 단단한 무기, 혹은 확장하는 네트워크 없이는 아무 곳에도 나서지 못하는 범죄자.

죄질 나쁜 범죄자인 주제에 스스로 ‘악마’라며 허세를 부리는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커’가 어떤 남성들의 자아상이 된 시대를 한탄하게 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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