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왜 조주빈은 ‘여성’ 피해자들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알림

왜 조주빈은 ‘여성’ 피해자들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입력
2020.03.25 18:58
0 0

 ‘n번방 사건’ 관계없는 ‘손석희’ 등 남성 이름만 말해 

 권일용 “여성 대상 성 착취 범죄 하찮게 생각하는 것”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미성년자를 포함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n번방 사건’에서 ‘박사방’ 운영을 맡았던 핵심 피의자 조주빈(25)이 25일 포토라인서 한 발언에서도 이번 사건과 여성에 대한 관념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8시쯤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 선 조주빈은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느냐’는 질문에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답했다.

악질적인 범행에 더해 살인 등 강력범죄가 아닌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최초사례로 그의 발언에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일부러 덤덤한 척 표정으로 준비한 듯한 답변을 뱉은 그는 이후 취재진의 ‘범행을 후회하지 않나’, ‘범행대상이 미성년자인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 등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경찰이 현재까지 그에게 성 착취를 당한 것으로 파악한 피해 여성만 74명이고, 심지어 이중 미성년자가 16명이 포함돼있는데도 끝까지 여성 피해자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라는 말에 그가 입을 떼자마자 호명한 것은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김웅 기자로 모두 남성의 이름이다. 심지어 신상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서게 된 이유인 이번 성 착취 사건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기 혐의 관련 인물들이다.

온라인상에선 “피해를 입은 여자가 몇 십 명이든 죄송해하는 대상은 남자다”, “이 사태에서 죄송할 사람이 손 사장이냐 여성들이냐”, “조주빈이 손 사장을 언급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 26만 명의 공범과 피해자의 고통은 잊혀지고 있다” 등 분노하는 여론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자신을 ‘악마’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대체로 “악마는 무슨 악마냐 자의식 과잉”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의 발언과 관련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아동ㆍ청소년 여성들에 대한 파렴치한 성 착취 범죄인데 피해여성들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별건 사건 언급이 웬 말이냐”라며 “어떻게 하면 언론이 주목하고 대중들에게 영웅으로 보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 해석했다.

권일용 광운대 겸임교수는 “여성들을 유인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여성이 돈을 받고 성을 파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인간이 가진 가치를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이번 성 착취 사건과 관련 없는 사건 얘기를 포토라인에서 하는 것은 ‘너희는 이 사건(성 착취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