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체결된 역사적 ‘평화합의’에도 집안 싸움만 하는 아프가니스탄 정치권에 질린 미국이 급기야 원조금 ‘10억달러(1조2,345억원)’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돈줄이 사라지는데도 서로 대선 승리를 주장하는 아프간의 ‘두 대통령’은 네 탓 공방만 하며 평화합의 이행을 더욱 더디게 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24일(현지시간)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정적 압둘라 압둘라 전 최고행정관이 정정 불안과 미국의 원조 삭감 조치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두 사람을 합의 진전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했다. 가니 대통령이 이날 TV 연설에서 “압둘라의 권력 배분 요구는 위헌”이라고 비판하자, 압둘라 전 행정관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방문으로 찾아온 위기 해결의 기회를 (가니 탓에) 놓쳤다”고 맞받아쳤다.
가니와 압둘라는 지난해 9월 실시된 대선에서 저마다 승자를 자처하며 각각 별도 정부를 세웠다. 문제는 이들의 권력 다툼이 ‘아프간전 종식을 통한, 완전한 미군 철수’를 상정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미군과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이 평화합의에 서명한 데 이어, 아프간 중앙정부와 탈레반도 10일부터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 정통성 문제에 가로막혀 정부 측 협상단은 구성 논의조차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예고 없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찾아 중재를 시도했으나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고, 곧바로 지원금 10억달러 삭감이란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가니와 압둘라의 리더십 실패는 미국 국익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또 “정부 내 갈등이 계속될 경우 내년에도 같은 액수를 추가로 지원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엄포를 놨다.
미국의 원조 축소는 평화합의 이행은커녕 아프간 정부의 존립 자체에 엄청난 타격이 될 전망이다. 가니 대통령은 “주요 정부 기능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짐짓 의연한 태도를 내비쳤으나,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 예산의 4분의3을 국제사회 지원에 의존하는 아프간 입장에선 큰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미 뉴욕타임스도 “분열된 정치권과 탈레반과의 전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아프간에 원조 감축이란 악재까지 겹쳤다”면서 앞날을 어둡게 점쳤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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