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 시행 첫날인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앞. 불과 10m 떨어진 곳은 왕복 4차로 도로였다. 정문에서 300m 이내 통학로는 스쿨존이라 30㎞ 이내 속도로 운전해야 하지만 과속단속카메라만 통과하면 다시 속도를 올리는 차들이 적지 않았다. 서둘러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 오토바이들은 한눈에도 제한속도를 넘나들었다. 한 주민은 어지럽게 오가는 오토바이들을 보며 “민식이법을 뉴스에서 보기는 했는데 체감은 안 된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이 시행됐어도 전국의 학교 인근에서는 과속과 불법주정차, 무당횡단이 여전했다. 바뀐 법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운전자와 보행자들도 적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학교들이 개학을 미루며 학생들이 없는 상태에서 법이 시행된 점도 혼선을 부추겼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시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당시 9세)군의 이름을 딴 법률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뜻한다. 스쿨존 내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및 13세 미만 어린이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전자를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게 핵심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2,509건이다. 이 사고들로 어린이 33명이 숨지고 2,612명이 다쳤다.
이런 민식이법의 의미에도 이날 과속 및 불법주차 차량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왕복 8차로 도로에는 바닥에 큼지막하게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노면표지가 있는데도 30㎞ 이하로 주행하는 차량을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였다. 이 학교 옆 일방통행로에는 불법주차가 없었지만 그 길만 벗어나면 도로 한 켠은 불법주차 차량으로 가득했다. 역시 교문에서 300m 이내인 스쿨존이다. 인근 주민은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 앞을 지나는 학생이 적어서 그런지 민식이법이 시행됐어도 평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스쿨존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서슴없이 건너는 보행자들도 다수였다. 종로구의 또 다른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무당횡단을 한 A(73)씨에게 이유를 물어보자 “고작 10m도 안 되는 횡단보도인데 금방 건너면 되지 않느냐”며 되레 성을 냈다. 해당 학교의 스쿨존 횡단보도 앞에서 25년 넘게 문구점을 운영하는 윤모(65)씨는 “가게에서 내다보면 무단횡단이 비일비재하다”면서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저런 모습을 보고 따라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일부 운전자들은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처벌이 과도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골목에서 갑자기 뛰어나오는 학생 등을 미리 알고 대비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정모(43)씨는 “스쿨존에서는 항상 시속 30㎞ 이내로 운전하지만 그래도 사고를 낼 것 같아 불안하다”면서 “아예 스쿨존을 피해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법의 조기 정착을 위해 수시로 현장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ㆍ정차 위반 범칙금ㆍ과태료를 일반도로(승용차 기준 4만원)의 3배까지 부과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라며 “불법 주ㆍ정차 차량으로 시야가 가려져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학교ㆍ유치원 근처 불법 노상주차장 281곳도 폐지하는 등 후속 조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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