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상 초유의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면서 4년을 기다린 선수들도 일대 혼란에 빠졌다. 특히 도쿄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시사한 ‘레전드’들에겐 앞으로 또 1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길다.
‘사격 황제’ 진종오(41ㆍ서울시청)는 2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우선은 건강이 최우선이다. 하루라도 빨리 결정이 나 다행이다”라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을 반겼다. 다만 선수들이 겪을 허망함은 공감했다. 그는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 그 중에서도 은퇴를 생각하는 선수들은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종오 역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으로 여기고 최근까지 개인훈련에 매진 중이었다. 진종오는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패(50m 권총)를 포함해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동메달 2개를 합쳐 올림픽 통산 6개의 메달을 수집해 양궁 김수녕과 함께 한국인 최다 메달 기록 보유자다. 메달 1개만 더 보태면 올림픽사를 새로 쓴다. 하지만 모든 사이클을 2020년 7월에 맞춰놨던 시계가 갑자기 멈추면서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개근했던 진종오에게도 생소한 5년 만의 올림픽이 됐다. 그는 “내년에도 기량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다시 준비해서 도전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남자 펜싱 사브르 ‘삼총사’의 맏형 김정환(37)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펜싱 남자 사브르는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에 가장 근접한 종목으로 꼽힌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정환은 본보와 통화에서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됐다”며 “올해로 벌써 만 37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고, 금메달을 딸 수 있으리라 자신했는데 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멘붕’ 상태다”라고 털어놨다.
금메달을 거머쥔 뒤 결혼식을 계획했던 그는 “예정에 없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기다려준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결정할지 아득하다”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나마 올림픽이 취소되지 않아 다행이다”이라면서 “내가 걱정한다고 당장 상황이 바뀌거나 해결되는 것은 없다. IOC나 국제펜싱연맹, 대한펜싱협회 등의 결정을 지켜본 뒤 침착하게 행동하겠다”라고 말했다.
역시 도쿄가 마지막임을 예고한 ‘배구 여제’ 김연경(32ㆍ터키 엑자스바시)은 소속사 라이언앳을 통해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연기 소식을 들으니 당혹스럽긴 하다”며 “그러나 현재 전 세계가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2020년 올림픽만 바라보고 지금껏 달려왔다. 꿈의 무대가 눈앞에 있었는데 연기되면서 우리 선수들도 다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니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연기가 발표됐으니, 잘 버티고 준비해서 2021 도쿄올림픽을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태권도 ‘월드스타’ 이대훈(28ㆍ대전시청)도 도쿄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려던 계획을 1년 뒤로 미루게 됐다. 그는 근 10년 간 각종 1위를 독식했지만 유독 운이 닿지 않은 올림픽에서만 세 번째 도전이다. 남자 레슬링 간판 김현우(32ㆍ삼성생명), 런던올림픽 남자 양궁 금메달리스트 오진혁(39ㆍ현대제철), 꿈에 그리던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은 여자복싱 오연지(30ㆍ울산시청)도 고독한 사투를 1년 더 벌이게 됐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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