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페인티드 버드’

영화 '페인티드 버드'는 한 유대인 소년의 고난을 통해 야만의 시대를 고발한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이 영화를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상영됐을 때 몇몇 관객들이 견디지 못 하고 나갔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악마와도 같은 인간의 야만과 타락이 169분 동안 흑백화면에 이어진다.

체코 영화 ‘페인티드 버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유럽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인 유대인 소년은 나치의 학살을 피해 어느 외딴 집에 맡겨진다. 돌봐주던 노인이 급작스레 숨지면서 소년은 지옥 같은 상황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소년을 학대하고, 마음껏 착취한다. 소년이 유랑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악랄하다. 폭력은 예사. 소년을 노동으로 혹사시키거나 성적 유린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년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는 몇몇 덕분에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하지만,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에 충실하며 목숨을 겨우 유지하는 동시에 세상을 향한 적개심을 키운다. 소년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매번 이름을 물어보지만 소년은 답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와 세상에 대한 완강한 부정이다. 소년은 야만의 피해자이면서 목격자다. 카메라는 소년의 눈으로 인간의 악마성을 고발한다.

영화는 저지 코신스키(1933~1991)의 동명 소설(1965)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 코신스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신분을 감춰 살아남았다. 코신스키가 소설에 자신의 경험을 담아낸 것으로 추정되지만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 속 인간은 종종 악마성을 드러내지만, 자연은 무심하게도 찬연하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어지니 ‘굳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페인티드 버드’의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은 지난 15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내 영화와 원작소설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호울 감독은 체코 예비군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두 차례 다녀왔고, 유니세프와 수 년 동안 일하면서 르완다 같은 나라의 난민 캠프를 방문한 적도 있다.

마르호울 감독은 “전쟁과 범죄 등으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왔는데 내게는 이게 현실세계”라고도 말했다. 그는 최근 헝가리와 폴란드 정치권에 분 극우 바람을 지적하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마르호울 감독은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 속 나라가 어디인지 드러내지 않았다. 대사조차 범슬라브어(슬라브어권 국가들끼리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2006년 만들어진 언어)로 이뤄져 있다.

영화 속 소년이 만난 한 노인은 새를 기른다. 노인은 어느 날 작은 새의 몸에 색을 칠한 후 하늘로 날려보내는데, 새는 무리에게 공격 당하고 추락한다. 낙인이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제목이 왜 ‘페인티드 버드’(Painted Birdㆍ색칠된 새)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의 장면 장면이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악몽과도 같지만, 혐오와 적대가 넘쳐나는 이 시대, 영화가 주는 울림은 크다. 2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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