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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범죄 재발 막으려면… 공급·수요·유통채널까지 엄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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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범죄 재발 막으려면… 공급·수요·유통채널까지 엄벌을”

입력
2020.03.26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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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신체적 성폭력만 엄벌하는 법체계로는 대응 어렵다”

음란물 소지·이용 개념 넓히고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강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ㆍ유포해 수익을 챙긴 ‘n번방’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정치권과 수사기관이 부랴부랴 처벌ㆍ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체적 성폭력 행위만을 엄하게 처벌하는 법체계로는 디지털 성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신체적 성폭력 이상으로 폐해가 클 수 있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 정책ㆍ제도 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아동ㆍ청소년을 상대로 한 예방교육 또한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 이젠 SNS가 주무대

경찰에 따르면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 70명 중 16명이 미성년자였으며, 비밀방 운영자들은 대개 SNS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이어 미성년자들에게 모델 아르바이트나 온라인 데이트 등을 미끼로 사진을 요구하고, 계약서를 핑계로 신상정보를 확보하는 식으로 범행을 시도했다.

‘n번방’ 사건처럼 뉴미디어를 이용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매수 및 성매매 알선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매수의 91.4%, 성매매 알선의 89.5%가 메신저나 SNS,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이뤄졌다.

SNS 등을 통한 미성년자 피해가 급증하는 이유는 온라인에 대한 변화된 청소년들의 인식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SNS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온라인 공간을 오프라인보다 더 안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온라인에 익숙하다. 검찰 관계자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오프라인에서는 하지 않을 위험까지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청소년들이 신체적 폭력이나 대면 협박 없이도 쉽게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한 번이라도 발목이 잡히면 피해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벗어난다고 해도 피해 영상이나 이미지가 어딘가에 남아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우울함, 죄책감 등을 경험한다”면서 “온라인상에 떠도는 범죄 피해물로 인한 피해는 사회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 처장은 “피해자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며 불법적으로 촬영한 사람들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범죄 피해물이 남아있어도 추가적으로 유포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는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 깨달아야”

학계에선 행정ㆍ입법부가 오프라인에서의 신체적 성폭행을 더 중한 범죄라 여기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임다혜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특히 ‘합의된 것’이라거나 ‘놀이’였다고 변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의 착취나 폭력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이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수요자, 공급자, 유통채널까지 모두 처벌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불법촬영물을 소지하면 처벌하긴 하지만, 불법음란물이 더 이상 ‘책자’나 ‘다운로드’를 통해서만 유포되는 게 아닌 만큼 변화한 기술과 매체 특성을 고려해 ‘소지’및 ‘이용’의 개념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의 가장 큰 특성인 ‘유포’의 용이성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청소년 및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필요성도 과제다. 김지선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의 인터넷 활용 관련 문화개선이 필요하다”며 “인터넷이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며, 온라인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고, 피해를 입었을 때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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