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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19와의 싸움, 관건은 글로벌 연구협력이다

입력
2020.03.26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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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 현인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현안을 분석하는 버그루엔연구소(Berggruen Institute)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와중에 행성 차원의 ‘공동면역주의(planetary co-immunism)’가 도래함을 전망했다. 원어 코이뮤니즘은 공산주의를 뜻하는 코뮤니즘과 발음상 흡사하다. 코뮤니즘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주의로 매도되던 빅브러더 정부들의 복권, 보건의료 감시 강화에 의한 프라이버시의 종언, 국경을 높이 쌓고 국민을 가두는 국가의 조치 등은 그간 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화두로 삼아온 우리에게 낯선 광경이다.

그러나 공동면역주의는 그러한 증상들을 합리화하려는 개념이 아니다. 이 개념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 앞에 강화되는 글로벌 연구 협력이다. 영국의 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에서 중국의 지식정보 프로젝트인 국가지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구의 결과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 밤낮으로 연구하는 의생물학자들 사이에 공동 목적을 향해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인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코로나19 연구개발 로드맵 수립을 위한 글로벌 포럼’에는 WHO 감염병 연구개발 블루프린트와 감염병연구 글로벌 컨서시엄인 ‘글로피드아르(GLOPID-R)’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역학, 임상, 감염관리, 진단, 치료제와 백신 개발 등 9개 분야에서 우선하여 진행할 8개 연구 과제와 중장기적으로 수행할 과제를 선정했다. 글로피드아르에는 감염병 연구를 지원하는 세계 유수의 출연기관을 포함한 28개 기관이 참여하는데 한국연구재단이 그중 하나다.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기구로는 감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 있다. 몇 나라 정부와 게이츠재단(Gates Foundation), 웰컴트러스트,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등이 참여하는 이 연합체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20억달러 모금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원인 웰컴트러스트는 게이츠재단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각각 5,000만달러를 우선 출연하기로 했다. 웰컴트러스트의 이사장이 WHO 감염병 연구개발(R&D) 블루프린트 의장을 맡고 있다.

필자는 WHO 연구개발 블루프린트 과학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WHO,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게이츠재단 등에 소속 또는 연관되어 있는 연구자들의 협력 제의 또는 문의이다. 여러 국내 연구기관과 유능한 연구자들을 이들과 연결시켜주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만큼 열의 있는 기관이나 연구자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외국과의 협력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메르스 사태 때 질병관리본부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파견한 요원들의 끈질긴 요청에 의해 병원체를 제공했다가 국회의원들의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병원체는 나고야의정서에 의해 보호되는 국가의 생물자원으로서 소중히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각국의 연구자들이 보호주의적 자세를 던지고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초기에 필자는 병원체를 구하지 못한 국내 연구기관을 위해 일본 기관에 부탁하여 흔쾌한 협조를 받아낸 적이 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처에서도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오랜 기간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며 신뢰를 구축한 전문가들의 관계는 다르다.

코로나19 방역 모델의 수출국이 된 우리나라는 연구에서도 국제 협력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많은 자료를 축적한 우리나라가 국제협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 동물과 환경을 담당하는 농림부와 환경부까지도 함께하는 범부처 연구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그간 보건복지부 중심의 범부처감염병연구포럼과 감염병대응연구개발추진위원회가 역할을 해 왔으나 현재의 국제적 연구협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민간 산학기관과의 파트너십이 절실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거둔 코로나19 진단의 성과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민간 업계와 적극적으로 협력한 데 힘입었다. 연구 또한 그래야 한다.

외계의 침략자들을 상대로 지구가 합심하여 싸우는 공상과학 영화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외계인이 아닌, 인간의 몸에 침투한 미생물과 싸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를 위한 연구자들의 단결, 그것이 이끌어내는 인류의 단결을 강조하려고 만든 말이 바로 공동면역주의, 코이뮤니즘이다. 우리나라가 방역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이 행성을 지키는 지구연합군의 선봉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연구자들도 가져야 한다.

지영미 WHO 코로나19 긴급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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