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구속에도 인터넷에는 성범죄 불감증
“공무원 준비하면서 생활비 벌려고 음란물 4,000개 올린 헤비 업로더입니다. 벌금 400만원 나왔네요.” (작성자 A씨)
“고생 많으셨어요. 예전이면 죄 같지도 않은 죄인데 시국 잘못 걸려 처벌이 세네요.” (댓글)
회원수가 15만여 명인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한 커뮤니티에 지난해 4월 게시된 글과 아래 달린 댓글 중 하나다. 교정직공무원 준비생 A씨가 ‘경찰서 다녀온 후기’를 남기자 ‘위로 댓글’이 쏟아졌다.
“아청(아동청소년물), 몰카(몰래카메라물) 몇 개가 마음에 걸렸는데 경찰이 못 본 건지 다행히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보다 형량이 낮은) 정보통신보호법 음란물 유포죄만 걸렸다”며 범행을 시인한 A씨를 커뮤니티 회원들은 “잘 되셨다” “타인을 즐겁게 해 준 죄밖에 없다’’는 둥 격려했다.
미성년자 등 수많은 여성 대상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ㆍ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가 검거된 뒤에도 달라진 건 없다. 조씨의 신상이 공개된 24일부터 2일간 접속해 본 포털사이트의 카페들에서는 이런 행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종의 온라인 성범죄 컨설팅 카페다. 아동ㆍ청소년이 나오는 불법 음란물을 시청 및 유포하다 수사망에 잡힌 회원이 조언을 구하면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회원이 다독였다. 이들 간에 오가는 대화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카페 회원들 사이에서 ‘음란물 다운로드는 죄가 아니다’는 말은 공식처럼 나돌았다. 회원 B씨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언급하며 “(적극 유포하지 않은) 단순 시청자나 다운로더는 절대 안 잡힌다”며 “이보다 더 잔인한 사건도 수두룩하고 경찰도 야동 보는 사람일 텐데, 유료 회원 선에서 잡고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일부 반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시는 그 사이트 이용 않겠다’는 식일 뿐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은 아니었다. 2018년 8월 경기 수원시의 한 여고 기숙사 불법촬영 영상물 유포 사건으로 수사 받다 이달 초 내사종결 됐다는 C씨는 “남자가 살면서 전과기록 한두 번 날 수 있고 나더라도 후회 없이 살면 된다”며 “아청법 음란물 배포죄까지는 신상등록 제외이니 낙천적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이들은 경찰이 수사 중 한 말을 끌어다 자신들의 범행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경찰의 한마디가 성범죄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셈이다. 한 회원은 불법촬영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이에게 “저도 같은 일로 걸렸을 때 경찰이 ‘이건 명백히 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며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똥 밟은 거라 생각하라”고 다독였다.
이렇다 보니 불법 음란물 수요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없다면 n번방 사건 같은 범죄가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아동단체협의회,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 관련 38개 단체는 25일 공동 성명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쳐 디지털 성범죄가 지금의 사회적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며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및 배포 등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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