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공개 앞둔 ‘박사방’ 운영자, 대학 학보사 활동
“말수 적었지만 동료와 자주 갈등”
미성년자 등 다수의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ㆍ유포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조씨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 활동 사실을 스스럼 없이 알리던 고교 시절과 달리 대학 진학 후에는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하며 태도를 바꾼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기간에도 꾸준히 아동보육시설 등에서 봉사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다.
24일 한국일보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조씨는 고교 재학 시절 말 수가 많고 활달한 성격에 학업 성적은 3년 내내 중위권을 유지했다. 다만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하는 비하언어를 써 반 친구들과 종종 다퉜다. 조씨의 고교 동창 A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주빈은 ‘홍어’(호남 사람을 비하하는 말) 같은 단어를 쓰며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며 “수학여행에선 이런 용어 등을 사용해 한 친구와 다투다 조주빈 이가 부러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면모가 크게 바뀌었다. 조씨는 2014년 인천의 한 공업전문대 정보통신과에 합격하면서 해당 학기에 학보사 수습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작성한 기사 중에는 학내 폭력 및 성폭력 대책 마련을 지적하는 내용(2014년 11월 5일자)도 있었다. 2015년엔 편집국장직을 맡아 학보 제작을 지휘했고, 이듬해 10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관련 전ㆍ현직 대학 언론인 시국선언에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방을 운영하며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르는 동안에도 조씨는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주로 아동보육시설과 장애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 사이트에 등록된 기록을 보면, 조씨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251시간 30분(총 58회ㆍ2014년 연탄봉사 240분 포함) 동안 봉사를 했다. 2017년 10월에는 인천의 한 봉사단체에 공식 봉사자로 등록했고, 지난해 12월쯤 팀장도 맡았다. 구속(19일)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 12일에는 해당 봉사단체 본부에 들러 올해 봉사 계획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봉사단체 관계자는 “시설 아이들에게 문화상품권을 선물하는 등 학생 신분으로는 흔치 않은 것들을 줬다”고 전했다.
성인이 된 이후 조씨를 지켜 본 지인들은 공통적으로 말수가 적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주장이 강해 동료들과는 자주 갈등을 빚었다. 조씨 후배이자 같은 학보사 편집국장 출신인 B씨는 “학보사 동료들과도 자주 갈등을 빚었던 걸로 안다”며 “일부 선배들 사이에선 ‘조주빈이 오면 (학보실) 문도 열어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이어 “술자리에서 학보사 여자 후배들에게 술을 따르도록 시켰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학보사 시절 담당 교수의 교정을 받지 않고 지면을 발행해 편집국장직에서 파면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평소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편집국장직에서 파면되자 자신이 사용했던 학보사 내 컴퓨터와 문서를 전부 포맷하거나 파기했다고 학보사 동료들이 증언했다. 2014년 11월엔 ‘실수를 기회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학보에 실으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박사방에서 조씨의 지시를 받고 성폭행을 하거나 돈을 인출해 전달한 공범 중 그의 신상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을 정도로 주도면밀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찰은 조씨의 박사방과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물 공유방의 시초인 ‘n번방’ 등을 수사할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바로 운영에 들어갔다. 특별수사본부는 국내 수사뿐 아니라 국제 공조와 피해자 보호 등도 담당한다.
현재 경찰은 조씨 및 박사방 운영에 가담한 공범 13명과 유료회원 124명을 검거해 이중 18명을 구속했다. 박사방 하나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4명이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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