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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국민 감정? 경찰 결정 앞선 피의자 신상공개 두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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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국민 감정? 경찰 결정 앞선 피의자 신상공개 두고 논란

입력
2020.03.24 17:55
수정
2020.03.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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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언론 자율적 판단 중요하지만 시청률 팔이 곤란”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조주빈씨가 대학 재학 시절 학보에 기고한 글.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조주빈씨가 대학 재학 시절 학보에 기고한 글.

“신상공개 감사하다.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는 언론이 나서서 공개해야 한다.”(he****), “ ‘박사’가 잘못한 건 맞다. 그래도 다음날 경찰이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신상공개여부를 결정한다는데 언론이 먼저 발표해도 되나. 법 위에 감정이 있는 것 같아 무섭다.”(ji****)

경찰은 24일 오후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 공개를 가슴 졸이며 기다린 사람들은 드물다. 전날 방송사 SBS가 저녁 종합뉴스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미리 공개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는 조씨의 얼굴은 물론 대학 등 정보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언론의 자율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문제는 SBS의 피의자 신상 공개 시점이다.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앞둔 상황에서 굳이 하루 먼저 공개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경찰이 강력 대응의지를 밝힌데다 신상공개여부를 결론짓겠다고 한 상황에서 전날 발표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며 “보도 방향 역시 관대한 성범죄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보다 피의자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부분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언론이 여론을 공론화하고 사회이슈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전제하면서도 “앞으로 유사한 사건 발생시 언론사가 법적 기준을 넘어 자체적으로 판단해 서로 공개한다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하루만 지나면 경찰의 발표가 나오는데 굳이 일찍 보도한 것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SBS가 23일 오후 8시 뉴스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고 공유한 텔레그램 비밀방 ‘박사’로 지목되는 조주빈의 얼굴을 공개했다. SBS뉴스 캡처
SBS가 23일 오후 8시 뉴스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고 공유한 텔레그램 비밀방 ‘박사’로 지목되는 조주빈의 얼굴을 공개했다. SBS뉴스 캡처

반면 보도여부는 경찰의 결정과 관계없이 언론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하는 문제로, 경찰의 발표에 앞서 언론사가 신상공개를 한 것 자체에 대해 비판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언론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언론사가 정부의 부속기관도 아니고, 통제 대상도 아니다”며 “언론은 자율적 판단에 따라 보도 여부를 결정해야 하므로 경찰에서 발표하기 전 언론이 미리 신상공개를 한 것으로 비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언론의 자율적 판단을 허용했을 때 과도한 경쟁이나 2차 피해 등 초래되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어디까지 자율적 판단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의자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1항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있다. 이처럼 성범죄자의 경우에도 법률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수사단계에서 피의자 신상공개는 연쇄살인 등의 범죄에 국한돼 왔다. 경찰이 수사단계에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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