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러네이 젤위거에 오스카 주연상 안긴 ‘주디’
“태평양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되고 싶으냐”고 은근히 위협한다. “20세가 되기 전 100만달러를 벌게 될 것”이라고 달래기까지 한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의 주연 자리까지 예약된 상황에서 저런 말들을 들으면 어떤 심정일까. 17세 소녀는 거대 영화사 대표 루이 B. 메이어의 구슬림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를 연기한다. “노래 잘 부르는 것” 빼고는 딱히 내세울 게 없었던 소녀, 주디 갈런드(1922~1969)는 영화사의 별이 된다.
도로시 이후 갈런드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영화감독 빈센트 미넬리를 포함해 다섯 번 결혼했고, 배우 라이자 미넬리를 딸로 뒀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는 세기의 히트곡이 됐다. 빛이 강한 만큼 어둠은 짙었다. 메이어는 갈런드를 사육하듯 엄격하게 관리했다. 몸매를 위해 식욕 억제제를, 그 약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자 수면제를 먹였다. 계약기간 동안 최대한 돈벌이를 하기 위해 쉴 틈을 쉬 주지 않았다.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은 방황으로 이어졌다.
영화 ‘주디’는 화려하면서도 신산한 삶을 산 갈런드의 런던 공연 시기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삶을 반추한다. 갈런드는 두 아이와 무대에 오르며 돈을 벌지만 삶은 계속 침몰한다. 숙박비가 밀려 장기 투숙 호텔에서 쫓겨나고 전 남편 집에 찾아가나 아이들만 두고 나와야 하는 처지다. 전 남편은 아이들을 자신이 기르겠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급전이 필요한 갈런드는 런던 무대로 향한다. 마음을 다잡고 공연에 전념하려 하지만 불면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는 갈런드에게 매일매일이 고비다. 새 남편 미키(핀 위트록)에게서 옅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인생은 다시 뒤죽박죽이 되고, 공연도 위기에 처한다.
‘주디’는 젤위거에 의한, 젤위거를 위한 영화다. 연출과 미술,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등 영화는 여러 면이 평균 이상을 해내는 가운데 젤위거의 연기가 유난히 돋보인다. 그의 몸동작과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 굴곡진 갈런드의 삶이 녹아있는 듯하다. 젤위거는 ‘주디’로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과 골든글로브상,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수상 결과다.
영화는 ‘오버 더 레인보우’ 노래로 끝난다. 노래를 부르기 전 갈런드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 노래는)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런 얘기”라며 “그게 우리 모두의 삶이고 결국 평생 걸어가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희망은 잔인하지만, 그 희망 덕에 우리는 삶을 유지하는지 모른다.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게 갈런드에게는 무지개였을 것이다. 영화는 연극 ‘무지개의 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감독 루퍼트 굴드.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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