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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외환보유액과 재정건전성

입력
2020.03.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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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할 때 대비해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처럼 필요할 때는 아꼈던 재정을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적지 않은 유지 비용을 감수하는 외환보유액처럼 재정집행 수준은 상황의 위중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시중은행 외환창구에서 은행직원이 달러 뭉치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급할 때 대비해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처럼 필요할 때는 아꼈던 재정을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적지 않은 유지 비용을 감수하는 외환보유액처럼 재정집행 수준은 상황의 위중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시중은행 외환창구에서 은행직원이 달러 뭉치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위기가 왔다. 곤두박질 치는 주가를 넘어, 달러자금 조달에도 경색 기미가 보이자 시장은 다시 2008년, 1997년의 공포를 떠올린다. 마침 전해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에 잠시 기대를 품었지만 금융시장 상황을 보면 아직 안심은 먼 얘기 같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 2월말 기준 4,091억7,000만달러로 역대 최고다. 미국을 포함해 9개 상대국과 맺은 1,900억달러+α의 통화스와프 규모까지 합치면 최소 6,000억달러의 외환 안전판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지만 당장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많을수록 좋을까. 그때 그때 다르다. 평시에는 왜 나랏돈을 낭비하냐는 지적을 듣는다.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면 통화안정증권 발행이자 등 비용이 상당히 든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국정감사 때마다 ‘과도한’ 외환보유액의 유지 비용을 따지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도 두세 번을 겪다 보니 유지비용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요즘은 누구 하나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든 달러가 아쉬운 처지가 될 수 있는 나라다. 유지 비용이 아까워도 우선은 충분히 쌓아놓는 게 필요하고, 또 그게 합리적이다. 높이 쌓아 올린 성벽처럼, 때론 넉넉한 외환보유액의 덩치만으로도 투기세력의 장난 시도를 포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마음대로 줄이지도 못하는 것이다.

위기를 맞아 재정을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본예산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이냐고 핏대를 세우던 사람들조차 요즘엔 “고작 11조원대 추경으로 되겠느냐”는 판이다. 전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주자고도 한다. “당장 51조원이 들겠지만, 세금만 잘 걷으면 4대강 예산보다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는 설명까지 곁들인다.

위급할 때를 대비해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처럼 필요할 때는 아꼈던 재정을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적지 않은 유지 비용을 감수하는 외환보유액처럼, 재정도 우리가 처한 사정을 봐가며 써야 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일명 국가채무비율ㆍ약 4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110%)보다 훨씬 낮다. 지금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며 한국이 돈을 더 써도 되는 근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안전해, 건전해 보인다’는 건 일종의 인상일 뿐이다. 한번 상승에 가속도가 붙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엔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약점으로 거론할 수 있다. 2008년에도 우리 외환보유액은 2,000억달러를 밑돈 적이 없지만, 시장에선 2,000억달러가 무너지면 끝인 것처럼 몰아 세웠다.

혹자는 재정을 과감하게 쓰는 게 미래에 더 큰 지출을 막을 방법이라고 한다.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조차 이런 질문은 같이 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쓰는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가서 닿고 있는가.

그 돈이 정말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긴 취약층의 생계를 도울지, 영세상인의 임대료 걱정을 덜어줄지, 한고비만 넘기면 크게 자라날 신생기업의 동아줄이 될지 말이다. 돌아보면 줄줄 새는 세금이, 보조금이, 수당이 정말 많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50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85.6%에 이를 걸로 전망했다. 수치의 정확도를 떠나 각종 의무 복지지출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비율이 급격히 늘어날 거란 사실은 자명하다. 외환보유액처럼 국가채무비율도 우리에겐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남들이 한번 생각할 때, 우리는 세 번, 네 번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쓸 때는 정말 낭비가 없어야 한다.

위기는 이번이 끝이 아니다. 다음 위기에 어떤 방패로 맞설까 하는 전략에는 평소 지닌 방패를 녹슬지 않게 관리하는 게 전제다. 남들보다 훨씬 큰 방패가 필요한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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