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 참여’ 국민청원부터 20만 동의 넘은 청원도 여럿 
 대통령도 “무겁게 받아들인다”…철저한 수사 지시 
‘텔레그램 n번방’ 중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남성 조모씨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국민 신문고’라 불리는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을 뒤덮는 이슈가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아니라 바로 n번방 사건인데요.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만도 5개에 달하는데요. 대부분 n번방을 만든 운영자들과 가입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들 5개 청원에 동의를 표한 서명자 수만 합쳐도 24일 오후 5시 현재 560만명이 넘습니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n번방 사건에 국민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건데요.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청원을 언급하며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죠.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듯 바로 다음날인 이날 오후 청와대는 이들 5개에 대한 답변을 서둘러 내놨는데요. 민갑룡 경찰청장과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 형태로 공개된 답변에서 n번방 사건에 관한 향후 경찰 수사 및 디지털 성범죄 근절 방안을 포괄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만큼 청원의 의미가 무겁다는 얘기일 텐데요. 그래서 청원게시판에 n번(방)을 검색어로 넣어봤습니다. 같은 시간 기준으로 조회되는 청원만 164건에 달합니다. 이들 청원만 잘 들여다봐도 n번방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풀어야 할 숙제들을 짚어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주요 청원을 통해 n번방 사건을 정리해봤습니다.

 ◇ 용의자 신상? 당연히 공개해야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n번방 사건과 관련 있는 첫 번째 청원은 운영자 조주빈(25)씨의 신상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원은 24일 오후 5시 기준 255만명이 동의해 역대 최다 청원 기록(‘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요청’, 173만1,900명)을 갈아치웠습니다.

청원이 시작된 18일에는 조씨는 경찰에 붙잡혔을 뿐, 그에 관한 정보는 알려진 게 없었는데요. 이튿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언론에 공개됐지만, 당시 조씨는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수갑을 찬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1995년생 조주빈, n번방 운영자 중 한 명인 그의 신상이 처음 드러난 건 23일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관련기사: 박사방 운영자는 25세 조주빈) 경찰이 공개를 결정한 건 이튿날입니다.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할지는 경찰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가 판단하는데요. 서울경찰청은 24일 내부위원 3명과 외부 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심의위를 열어 조씨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간 연쇄살인범 등 강력범죄자에 대한 신상은 공개돼 왔지만, 형이 확정되지 않은 성범죄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경찰은 “국민의 알권리,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피의자의 성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그의 주민등록상 사진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또 구속 상태인 조씨가 25일 검찰에 송치될 때 그는 포토라인에도 서게 됩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주민등록 사진. 사진=서울경찰청
 
 ◇가입자도 신상 공개를 해야 된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지금 이 순간, 밤잠을 설치며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n번방에 돈을 내고 성착취물을 공유한 이들일 겁니다. 2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이 되는데요. 이들 가입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원도 10여개에 달합니다.

문 대통령의 주문에 더해 경찰은 n번방 관련 수사 과정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하거나 소지한 회원, 참여자들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고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실제로 지난달 n번방에서 파생된 텔레그램 단제대화방의 운영자와 구매자 등 66명이 검거된 일도 있었지요.

n번방 참여자를 검거하겠다는 경찰의 의지가 강하고 이들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까지 빗발치면서 온라인에는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실수로 잠깐 들어갔는데도 처벌받나. 너무 불안하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호기심에 ‘n번방’ 들어가서 눈팅만 했는데 처벌받나요”)

참여자들의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해 “지금껏 (성폭력 범죄 관련해서) 신상 공개가 된 적은 없지만 첫 사례로 공개가 돼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있는데요. 범죄심리학자이기도 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신상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표 의원은 “성폭력 특별법 제25조에 성폭력 범죄의 경우에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두고 있다”며 “성폭력 범죄의 정의에 보면 아동 대상, 미성년자 대상 간음이나 업무상 위력 간음 또는 추행까지도 해당하는 법 조항이다. 그러면 N번방 사건에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상 공개를 넘어 실제 처벌이 가능한지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한데요.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법 촬영물, 피해 성착취물을 소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처벌할 수 없다 보니 다운받거나 보는 것에 대해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범죄 예방 효과가 떨어지고 가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꼬집었습니다.

 ◇국제 공조수사는 왜 필요하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성 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 수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은 앞선 청원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먼저 사건이 대중에 알려지기 전인 1월 2일 시작돼 지난달 1일 마감됐으면서도 20만명이 넘게 동의해 청와대의 답변 요건을 충족한 것이고요. 또 청와대의 답변이 공식적으로 나온 n번방 관련 첫 국민청원이기도 합니다.

국제 공조 수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원자는 n번방 운영에 사용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해외에서 개발돼 운영 중인 점을 근거로 텔레그램 본사가 있는 국가와 국제 공조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민갑룡 경찰총장은 “2월 10일부터 텔레그램을 포함한 SNS, 다크웹, 음란사이트, 웹하드 등 사이버성폭력 주요 유통망에 대해 집중 단속을 펼치고 있다”며 “인터폴 및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외국법집행기관과의 협력이나 외교 경로를 통한 국제형사사법공조뿐만 아니라, 해외 민간 기관·단체와 협력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n번방’ 수사 국제공조 촉구 관련 청원에 대한 답변을 말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유튜브

청와대 사이트는 아니지만 국제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해외 청원도 등장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www.change.org)에 지난 23일 올라온 청원인데요. 청원자는 영어로 n번방 사건을 설명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 국제범죄 조사기관의 공동 조사를 요청하고 전세계 인권단체와 언론이 관심을 둘 것을 촉구했습니다. (관련기사: ‘n번방 사건’ 국제 수사협조 요청하는 국제 청원도 등장)

하지만 과연 국제 공조 수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한데요. 숱한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아직까지 텔레그램 본사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조차 알려진 게 없습니다.

 ◇“n번방 연루자가 이 직업엔 종사할 수 없도록” 어느 직업?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n번방 가입교사_교직아웃”

n번방에 참여했던 공범들을 특정 직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23일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n번방 피해자로 드러난 74명 중 16명이 미성년자임이 확인됐는데요. 이를 두고 청원자는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을 소비하는 사람이 과연 교사가 될 자격이 있나”라며 “n번방 연루자가 교사로서 일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촉구한 겁니다.

불붙는 청원에 기름을 부은 일도 있었습니다. 한 누리꾼이 온라인 공간에 올린 글인데요. 그는 자신이 교사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며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으면 임용고시를 못 치르게 되나”라고 묻는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이 초등학교 교생이라고 밝힌 다른 누리꾼은 “n번방 사건 참여자 전원 신상이 공개되면 학교에도 전해지나”라고 묻는 글을 올렸는데요. 이러한 글들을 바탕으로 n번방 가입자 중에 교직을 희망하거나 이미 교직에 있는 이들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난 겁니다. (관련기사: “공범 n번방 참여자들, 교사로 일하게 둬선 안 됩니다”)

‘n번방 연루자가 교사로서 일할 수 없도록 해주세요’라는 청원은 사전 동의 요건인 100명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얻었지만, 끝내 비공개 처리됐는데요. 특정 직종을 지목한 것이 삭제 배경으로 풀이됩니다. 대신 ‘성착취 채팅방 이용자 전원 색출 후 ‘성범죄자 알림e 등록’, ‘취업 제한 직종 적용’을 해야 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했는데요. 참여자에 대한 처벌 강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면서도 취업 제한 직종 범위를 확대한 점이 눈에 띕니다.

청원자는 “n번방 참여자 전원을 색출해 벌금형,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내려 성범죄자 알림e에 이들 전원이 등록되게 하고 성범죄자 취업 금지 직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는데요. 특히 참여자는 단순 음란물 구매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며 동조자임을 강조했습니다. 청원자는 “이들이 결제한 금액과 ‘강간하자’는 호응은 주도자가 피해자를 협박해 성 착취하도록 도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는 경우 특정 직종에 최대 10년 동안 취업하기 어렵도록 제한을 받습니다. 아동 및 청소년에게 직접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도록 돼 있고요.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나 체육시설, 의료기관 등이 해당합니다.

 ◇피해자는 누가 보호해주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n번방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뒤늦게 가해자 일당이 붙잡히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피해자가 만들어 졌는데요.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국민청원에서도 먼저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대통령 ‘강력대응’ 주문 후에야… “N번방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 나서는 여가부)

지난 23일 등장해 하루 만에 약 7만명이 서명한 ‘n번방 피해자들을 보호해주세요’라는 청원에서 청원자는 “피해자에 미성년자가 아주 많다”며 “행복해야 할 나이에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호소했어요. 청원자는 피해자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는데요. 그는 특히 “피해자들의 영상이나 사진 등도 유포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n번방에 들어가서 성착취물을 보려면 최대 150만원을 입장료로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렇게 발생한 범죄 수익금을 몰수해 피해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청원도 있습니다. 청원자는 “국가에서 디지털 성범죄로 발생한 수익을 책임지고 몰수하여 그 금액으로 피해자들의 정신 상담 및 치료 등을 도와야 한다”며 “몰수가 어렵다면 기부금이라도 받아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신상정보 공개, 어떤 기준이죠? 

형이 확정되기 전인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 현행법상 가능합니다. 대신 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그 기준도 명확합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기준을 충족할 경우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데요. 신상 정보 공개가 타당한지 여부는 경찰 내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가 판단합니다. 심의위원회는 총 7명이고 이 중 4명은 각 경찰청ㆍ경찰서 소속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가 위촉된다. n번방 사건에서는 서울경찰청이 외부 전문가 4명과 함께 심의했지요.

신상공개 기준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피해가 중대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피의자의 재범을 막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입니다. 이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의 얼굴, 나이, 이름 등을 공개할 수 있는데요. 다만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는 내용도 특례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성범죄자는 누구나 신상이 공개되는 것 아니냐고요?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는 피의자 신상공개와는 별개입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성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형이 확정된 자에 대해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인데요. 이 제도를 통해 신상공개가 되면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최장 10년간 공개가 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범죄자의 경우 피의자 때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도 형이 확정되면 공개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