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귀국까지 제한하고 있는 베트남이 삼성과 엘지 등 한국 기업의 임직원 입국을 추가로 허용했다. 유럽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자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해결 이후 자국 경제 회생을 위해선 한국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24일 삼성ㆍ엘지 베트남 현지법인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오는 28일 북부 번동공항을 통해 삼성디스플레이 엔지니어 180여명의 추가 입국을 허용키로 최근 결정했다. 이들은 입국 즉시 지난 13일 1차 입국한 엔지니어 170여명과 다른 격리시설에서 생활하면서 현지 공안의 관리ㆍ감독을 받는 ‘준격리’ 상태로 생산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1~2차 입국 인원은 현지에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OLED 모듈의 공장 개조 작업을 진행한다.
삼성 측은 2차 입국 이후에도 300명 이상의 한국 현지 인력을 추가로 입국시킬 계획이다. 삼성 그룹 베트남 현지 법인 관계자는 “3~4차 입국도 차질 없이 논의 중”이라며 “베트남 정부가 이미 수 차례 사전 답사를 통해 자체 격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 이번 입국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 공장을 두고 있는 엘지 그룹도 베트남 정부로부터 예외 입국을 허용 받았다. 엘지 측은 이달 30일 전세기로 엘지전자ㆍ디스플레이ㆍ이노텍 소속 엔지니어 250여명을 베트남으로 보낸다. 엘지 엔지니어 역시 북부 번동공항으로 입국하며, 도착 후 삼성과 마찬가지로 별도 시설에 격리된다. 엘지 엔지니어들은 현지에서 생산 중인 스마트폰과 자동차 부품 및 생활 가전의 개발ㆍ생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베트남의 한국 기업인 예외 입국 결정은 자국 내 산업 구조 현실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지난 해 기준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인 한국에 대한 문까지 완전히 걸어 잠글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국 수출 및 생산 계획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베트남 출입국관리 당국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처와 방역 능력을 신뢰하는 것도 이번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ㆍ엘지 외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필수 인력에 대한 입국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베트남이지만 한국 기업인 입국과 관련된 논의 창구만큼은 닫지 않고 있다”며 “베트남 정부와 한국은 여전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노이 경제인단체 관계자도 “삼성과 엘지처럼 단일 기업군으로 격리가 어려워 관리 동선 등 문제를 조율하는 일이 남았지만, 내달 초중순에는 다른 기업인들의 입국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이날 기준 12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 대부분은 유럽 혹은 말레이시아 등에서 감염된 인원이거나, 그들과 접촉한 자국민들이다. 아직 현지에서 한국인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자 지난 22일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또 해외에 거주 중인 자국민과 그의 가족들의 입국까지 전수 검증하는 등 해외 인원 유입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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