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재택 근무·원격 수업 늘면서 플랫폼 ‘줌’ 관심 폭발 
 CEO 에릭 위안, 미국 비자 8번 퇴짜 맞고 실리콘밸리 입성한 ‘흙수저 신화’ 
지난해 4월 줌 창업자 에릭 위안이 자사의 광고가 새겨진 나스닥 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온라인 강의 듣는 학생들의 ‘필수템’이 있죠. 원격근무를 돕는 실시간 협업 서비스입니다. NHN의 ‘토스트 워크플레이스 두레이’, 네이버 자회사 웍스모바일의 ‘라인웍스’ 등 메신저 기반의 협업 플랫폼이 특수를 누리고 있죠.

그 중에서도 단연 미국의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스’(Zoom Video Communicationsㆍ줌)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화상으로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무료 체험도 돼 접근성과 편의성을 갖췄거든요. 이미 미국뿐 아니라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국내 주요 대학들이 줌을 이용해 화상강의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죠. 비대면 시대, 전 세계에 새로운 원격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일상을 바꿔놓은 줌이 사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칠전팔기’를 넘어 ‘팔전구기’로 탄생한 플랫폼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장거리 연애하다가 화상대화 구상?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대 관계자가 화상대화 플랫폼 ‘줌’을 이용해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줌의 창업자인 에릭 위안(Eric Yuan·50) 대표는 중국 산동성 출신으로 흔히들 말하는 ‘흙수저’였다고 해요. 그는 1980년대 중국산동과학기술대에 다니며 여자친구(현재 아내)와 연애를 즐기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여자친구와는 기차로 10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장거리 연애였다는데요. 데이트를 하러 갈 때마다 하루를 꼬박 쓰면서 육체적 피로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요. 기차 안에서 그는 집에서도 여자친구를 볼 수 있는 화상대화가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중국 내 인터넷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라 그의 상상에 그쳤죠.

1990년대 초반 중국 베이징에서 일하던 그는 미국에서 야후, 넷스케이프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미래의 가능성은 인터넷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웠고 그럴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결국 스스로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우연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연설을 보고 감명을 받아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죠.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번번히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거든요. 2년 동안 무려 8번 실패하고 9번째 만에 비자를 받아 1997년 스물 일곱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입성했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자신감과 끝까지 해내려는 뚝심이 그를 인터넷의 성지로 이끈 것이죠.

 ◇남들은 레드오션이라 버렸던 곳에서 만들어낸 대박 
줌은 2019년 4월 나스닥에 기업가치 약 160억 달러로 상장했다. AFP 연합뉴스

그는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웹엑스(WebEx)에 입사했습니다. 2007년 이 회사는 미국 시스코시스템즈(Cisco)에 인수됐고, 이후 위안은 엔지니어링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보다 사용자 친화적이고, 쉽고, 활용도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2011년 동료들과 시스코를 나와 줌을 창업하고 2013년 서비스를 출시했어요.

에릭은 2016년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이미 많은 대기업들이 스카이프, 행아웃, 웹엑스, 구글 미팅 등 다양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모바일에서 활용할지, 다른 프로그램과 어떻게 상호작용 시킬 지가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어요. 화질을 더 뛰어나게 하고, 100명이 함께 화상 회의를 진행할 수 있고, 단순히 화면뿐만 아니라 회의 내용까지 자동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능을 담았습니다.

에릭은 중소기업 및 대기업은 물론 원격 의료나 교육 관련 분야로 사업 대상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무료 사용 기능을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2명 이상이 화상회의에 참석할 경우 40분 동안 모든 기능을 무료로 쓸 수 있게 열어둔 겁니다. 줌은 기본적으로 대화 서비스라 혼자 사용할 수 없고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누구든 한 번 써보고 좋은 경험을 심어줄수록 ‘입 소문 마케팅’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판단이었죠. 이 ‘맛보기’ 마케팅은 쏠쏠한 효과를 얻었습니다.

줌은 지난해 4월 미국 나스닥 시장에 데뷔했습니다. 상장한 날 시가총액 159억달러(약 18조원)를 기록했죠. 구글, 애플, MS 등 대기업 경쟁자 사이에서 일궈낸 성공이었습니다. 중국의 가난했던 청년은 창업 8년 만에 억만장자로 거듭난 순간이기도 했죠. 그런 줌은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를 만나 슈퍼스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직장이든 학교든 모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되면서 줌이 추구해 온 가치가 딱 들어맞게 된 것이죠.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던 1월 말부터 지난 5일까지는 주가가 75% 급등하며 기업 가치가 폭발적으로 올랐어요.

에릭은 자유로운 소통을 중시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운영 방식으로도 귀감이 되고 있는데요. 지난해 기업평가 서비스 업체 글래스도어가 선정하는 ‘최고의 CEO’로 꼽혔습니다. 평가에 참가한 줌 임직원 중 99%가 그를 최고의 CEO로 지목했어요. 스스로 줌을 통한 화상 업무를 적극 활용하고 유연한 업무 체계를 구축한 덕분이었죠. 줌의 성공 신화는 어쩌면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에릭의 작은 바람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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