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 재개 전망엔 선 그어… 대남 이어 북미 담화 발표 ‘역할 강화’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보냈다고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2일 전격 공개했다. 양측 사이에 친서 외교가 이뤄졌다는 것 자체는 북미 비핵화 대화에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우리 조건을 미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선을 그은 만큼, 북미 관계가 당장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3시쯤 “김 위원장에게 보내온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힌 김 제1부부장 담화문을 보도했다. 김 제1부부장은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친서를 보내며 김 위원장과 훌륭했던 관계를 계속 유지해보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좋은 판단이고 옳은 행동”이라며 “응당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 시간으로 오후 2시쯤 발표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을 향한 메시지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조미(북미) 두 나라 관계를 추동하기 위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전염병(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자기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김 위원장의 노력에 대한 감동을 피력하면서 비루스(바이러스) 방역 부문에서 협조할 의향도 표시했다”고 김 제1부부장은 전했다.
우리 정부는 북미의 이 같은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의미를 부여해 격식을 차려 응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는 김 위원장과의 특별하고도 굳건한 개인적 친분 관계를 잘 보여주는 실례”라고 평가했다.
정상 간 친서 교환이 북미 대화 재개 신호탄이라는 장미빛 전망에 대해 김 제1부부장은 선을 그었다. 그는 “조미 사이의 관계와 그 발전은 두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놓고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되며 그에 따라 전망하고 기대해서는 더욱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역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 북측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세운 대북 제재 해제가 선결돼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북한은 되레 “우리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도 미국이 열정적으로 ‘제공’해주는 악착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발전하고 스스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계속 스스로 변하고 스스로 강해질 것”이라며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강조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과 미국과의 국가 간 관계를 분리 대응하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두 번째 담화문을 발표한 김 제1부부장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김 제1부부장은 이달 2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청와대가 “강한 우려”를 표하자 이튿날 “남의 집에서 훈련을 하든 휴식을 하든 자기들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내뱉는가”라며 원색적인 비판 담화를 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이 당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의 역할을 넘어 외교안보 분야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은 것 같다”면서 “외무성 등의 담화 수준을 넘는, 김 위원장의 의중을 담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김여정을 내세운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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