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전 세계에 ‘믿을 건 현찰뿐’이란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시중 은행을 비롯해 사설 환전소에서까지 달러를 손에 넣으려는 ‘달러 확보전’이 거세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분위기다. 주요 6개 통화와 견준 미국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는 지난 9일 94.74에서 19일 103.60까지 급상승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각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주식, 국채 등 금융자산을 내던지면서 위기의 최후 피난처인 ‘달러 현찰’을 사재기해 나타난 현상이다.
이는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원ㆍ달러 환율 고공행진(원화가치 하락)이 무색하게 투자자들이 달러 확보에 나서면서 달러예금 잔액도 급증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의 달러예금 잔액은 19일 기준 430억9,800만 달러(약 53조7,000억원)로 지난달 말(397억9,300만 달러)보다 8% 넘게 늘었다.
달러예금은 개인이나 기업이 보유한 달러를 일반 예금에 가입하듯 은행에 예치하거나 원화를 당시 환율로 달러와 바꿔 은행에 맡기는 상품이다. 가입 당시 고시된 이율에 따라 추후에 이자와 환차익을 얻을 수 있어 통상 강(强)달러가 예상될 때마다 투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극도의 공포심리 속에 이미 강달러가 된 상황에서도 달러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진작부터 달러를 사둔 투자자들이 원ㆍ달러 환율이 오를 때마다 달러를 인출하면서 달러 예금 잔액은 이달 들어 400억 달러 전후로 증감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미국,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16일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율이 이전 이틀(12~13일)보다 25원 넘게 오른 상태였지만 달러 예금은 하루 만에 8억6,800만 달러나 늘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대폭 인하(일명 ‘빅컷’) 다음날인 17일에는 환율이 17.5원이나 급등했음에도 달러 예금이 14억2,400만 달러(약 1조7,700억원) 늘었다. 달러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와중에도 향후 원ㆍ달러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봤다는 의미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전 세계가 달러만이 안전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어서 원ㆍ달러 환율 1,300원대는 이미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에는 달러 매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금을 들고 달러를 환전하려는 고객이 늘었을 뿐 아니라 외화예금 개설이나 달러 관련 상품 투자 문의도 평소보다 2~3배 늘어난 분위기”라며 “당장 달러가 필요하다기 보다,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다수”라고 전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사설 환전소에까지 달러 기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명동의 S사설환전소 관계자는 “보통 중국, 일본 관광객이 주고객인데 최근에는 내국인이 더 많이 찾는다”며 “달러를 파는 사람은 없고 찾는 사람만 있어서 돈이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변동성이 심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투자에 신중할 것을 조언한다. 김현섭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보유 자산 대부분이 원화라면 분산투자 차원에서 달러를 분할 매수하는 것도 괜찮다”면서도 “다만 이미 달러값이 상당히 오른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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