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시대의 탄생’ 저자 김학선 인터뷰
왜 우리는 여전히 바쁠까. 자동화와 전산화 덕분에 사람이 할 일이 확 줄었는데 말이다. 20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코레아노폰 연구센터’에서 만난 ‘24시간 시대의 탄생’ 저자 김학선은 “시간 자원이 공평하게 배분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다. 현재 그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이 센터 소속 연구자다.
자신의 저서에서 1982년 야간통행금지제도(통금) 폐지 이후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자원으로서 시간이 어떻게 개발되고 활용됐는지 분석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40년 전에는 노동자 1명이 일을 끝내는 데 1시간이 걸렸지만, 생산성 향상 덕에 지금은 30분이면 충분한 업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을 더 줄여 이걸 10분 만에 해내는 능력자가 존재할 수 있다. 지금 그의 1시간은 40년 전으로 치면 6시간으로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개인 능력만으로 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기계를 쓰거나 돈으로 인력을 구매한 결과인 것이다. 그는 “시간 자원도 자본에 비례한다”고 단언했다.
반면 ‘타임 푸어’는 늘 시간 부족을 호소한다. “1시간 할 일을 30분에 했으면 30분은 쉬면 되잖아요. 그런데 쉬는 사람이 있나요. 일을 더 많이 하려 하죠. 그렇다고 일한 만큼 보상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우리가 아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다른 누군가가 가져갔겠죠. 시간을 아낀 사람한테 돌아간 게 아니라면요. 제대로 시간이 분배되지 않으니 모자란 곳이 생기는 거예요.”
물론 갈수록 기울기가 가팔라지는 변화는 현대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통 조건이다.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계속 달려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이 더 빨리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 부진 책임은 시간을 허투루 쓴 개인이 뒤집어 쓰는데 그렇게 유도한 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시간 정치’였다고 김학선은 책에서 분석한다. “82년 1월 전격 선언된 통금 해제의 핵심 의미는, 가용 시간이 4시간 늘었다는 것보다 더 이상 구속과 중단 없이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100% 경쟁의 시간’이 주어진 거죠. ‘잠잘 시간에도 일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닌데도 불안감에 쫓겨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하는 ‘자기 착취’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는 신군부 정권의 의도가 새로운 사회의 규율을 자율로 포장하겠다는 거였다고 본다. 통금 해제 전 정황을 볼 때 정권은 통제력 강화를 위한 국민 시간 장악 수단들을 철저히 준비했다. 김학선은 “80, 81년 이뤄진 언론 통폐합과 정권 홍보 맞춤형 TV 편성 체제 구축, ‘국민생활시간조사’ 착수 등은 국민의 일상 시간을 조직하고 ‘땡전뉴스’(‘9시 뉴스’ 벨이 ‘땡’하고 울리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홍보 아이템이 방영된 사실에서 유래된 멸칭)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부족한 집권 정당성을 가리려면 불가피했던 자율성 부여를 신군부 정권은 도리어 자발적 순응 견인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김학선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통치성’ 개념으로 이를 해석했다. 강압 대신 모종의 합리성을 통치 행위 토대로 삼아 국민의 저항을 세련되게 차단했는데 통금 해제가 실마리였다는 것이다. 실제 80년대 독재 정권은 모순ㆍ갈등으로 불안했지만 붕괴하지 않았고 오히려 올림픽 개최, 민주화, 경제 성장 등 진전을 이뤄냈다.
김학선이 바라는 건 이렇게 시간이 누구한테나 공평한 자원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질서도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이 인식하는 것이다. “부(富)와 마찬가지로 시간도 양극화한 이상 정의롭게 재분배될 필요가 있어요. 생산성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종류의 시간도 있는 만큼 시간의 이질성과 다양성도 인정해야 하고요. 그러려면 먼저 시간이 인위적이고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사실부터 알아야 합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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