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무급 휴직 9000명 중 ‘거의 절반’ 언급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출근 투쟁’ 강행 예고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의 무급휴직 사태를 막기 위해 인건비 문제를 우선 협상하자고 제안했지만 미국 정부가 공식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한미군은 4월 1일로 예정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염두에 두고 23일 근무를 계속할 필수 인력의 규모와 명단을 통보하기로 했다.
20일 정부 소식통 등에 따르면 17~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7번째 협상에서 정은보 한국 수석대표는 미국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에게 방위비 분담금 총액 합의 지연에 대비해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문제를 우선 협상해 교환각서를 먼저 합의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이에 미 정부 측은 “인건비 문제를 우선 타결하면 총액 협상이 지연될 수 있다”는 취지로 정부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예정됐던 이틀 회의를 하루 더 연장해 한국 정부가 추가 방안까지 내놓았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협상을 마치고 귀국하던 정 수석대표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과 한미동맹, 연합방위 태세를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양국이 같이 인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주한미군은 무급휴직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까지 열흘 정도 남았고, 대면 협상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인건비 우선 타결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SMA 협상 불발을 상정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4월 1일부터 행정적 무급휴직을 실시한다며 지난달 27일 사전통보를 시작했다. 이어 한국인 근로자 9,000여명 중 생명ㆍ안전ㆍ보건 및 군사 대비태세 관련 분야 근로자를 필수 인력으로 분류해 계속 근무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규모와 명단은 23일 통보하겠다고 알린 상태다. 미 국무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규모와 관련해 ‘거의 절반’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이 인건비 우선 협상 불발 책임을 지면서까지 무급휴직을 강행하는 건 SMA 협상 과정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볼모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당초 미국은 현재 1년에 1조389억원인 방위비 분담금을 약 49억달러(약 6조원)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1조2,000억원 안팎을 제시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7차례 협상이 실시됐지만 간극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총액 인상 부분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약한 고리인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부분을 먼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이 무급휴직을 강행할 경우 항의의 뜻으로 ‘출근 투쟁’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무급휴직은 대한민국 안보는 물론 수만 명의 주한미군과 그 가족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9,000명의 한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수만명의 주한미군과 그 가족들을 볼모로 협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한국인 노동자 중 생명, 보건, 안전, 주한미군의 임무 수행과 관련되지 않은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주한미군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 한국인 노동자 모두가 출근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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