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자연증발시설. 지난 30년동안 이곳에서 방사성물질이 방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자력연 제공

지난해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있었던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가 설치 오류와 운영 미숙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또 동일한 시설에서 지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방사성폐기물이 흘러 나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원자력계의 안전 불감증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사고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조사 결과를 원자력연과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보했다고 20일 밝혔다.

사고가 있었던 곳은 원자력연 내 자연증발시설로, 연구원에서 발생한 극저준위(리터당 185베크렐 이하) 액체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했다가 자연 증발시키는 건물이다. 지난해 12월 원자력연 정문 앞 배수구에서 방사성물질(세슘-137)이 검출된 직후 연구원 부지 내·외부를 조사한 결과, 자연증발시설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우수관을 타고 인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원안위는 이에 대해 올 1월 21일부터 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 원안위는 자연증발시설 지하에 외부 배관으로 연결된 바닥배수탱크(600리터)가 설치돼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탱크는 당초 원자력연이 자연증발시설을 과기부로부터 허가 받았을 당시 제출한 설계도엔 없었다. 원내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은 별도의 지하저장조(86만리터)에 모았다가 위층으로 끌어올려 태양광으로 자연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처리돼왔다.

문제는 원자력연에서 매년 11월, 시설 동파 방지를 위해 모든 액체 방폐물을 지하저장조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일부 방폐물(연간 470~480리터)이 바닥배수탱크로 유입됐다는 점이다. 자연증발시설이 1990년부터 운영돼왔으니, 자그마치 30년 동안 방폐물이 바닥배수탱크에 연결된 배관을 통해 시설 외부로 방출된 셈이다.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자연증발시설 지하에 설치돼 있는 바닥배수탱크. 허가 받은 설계도엔 없는 설비다. 원자력연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연 인근 하천에선 지난해 말을 제외하곤 방사성물질 농도가 최소 수준으로 유지되는 등 특이사항이 없었다. 원안위와 함께 조사를 맡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방폐물 속 주요 방사성물질(세슘-137 등)이 토양 등에 잘 흡착되는 특성이 있어 방출 후 원내 부지나 우수관, 맨홀 등에 달라붙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30년간 방출량을 감안해 계산한 연간 피폭선량은 일반인 기준치의 약 300만분의 1에서 3,700분의 1로 나타났다고 원안위는 설명했다.

지난해 말 부지 외부(정문 앞)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건 같은 해 9월 있었던 미숙한 운전 탓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지하저장조의 방폐물을 처리하기 위해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밸브를 과도하게 개방한 바람에 방폐물 약 510리터가 넘쳐 외부로 흘러 나갔다. 이후 10~11월 사이 비가 많이 왔고, 그 영향으로 외부에 방출됐던 방사성물질 일부가 부지 밖까지 쓸려 나간 것으로 원안위는 판단했다.

더 큰 문제는 명백한 인재임이 밝혀졌는데도 책임 소재를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허가 받은 설계도와 다르게 건물이 시공됐기 때문에 자연증발시설을 이용해온 연구원들조차 바닥배수탱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당시 기록을 찾기 쉽지 않고, 오래 전 일이라 확인도 어렵다”고 말했다. 원자력연 관계자도 “관계자들이 모두 퇴직했기 때문에 설계가 바뀐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안위에 따르면 자연증발시설의 설계나 시공 모두 원자력연이 최종 관리감독 기관이었기 때문에 과기부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원자력연에 행정처분을 내리게 된다. 현재로선 8억~12억원 정도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원안위는 예상하고 있다.

20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박원석(오른쪽에서 세 번째) 원장을 비롯한 연구원 관계자들이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 조사 결과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원자력연 제공

한편 이날 원안위의 조사 결과 공개 직후 원자력연은 대전 본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원석 원자력연 원장은 “직원 모두가 큰 실망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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