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의 한 약국 앞에 공적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다. 안하늘 기자

2020년 봄, 한국에서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진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돈이 있다고 약국에 들어가 바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해에 해당되는 요일에, 그것도 단 2개만을 살 수 있으며 본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약국에 납품된 마스크가 다 소진되면 재빠르게 다른 약국에 가서 다시 줄을 서야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봄날마다 마스크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던 중국은 훨씬 더 강력한 놈을 통해서 마스크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셈이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영화 ‘마스크(mask)’ 는 짐 캐리(Jim Carrey)라는 배우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스탠리가 우연히 북유럽 신화의 유물인 마스크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걸 쓰면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는 약간 황당한 스토리의 영화이다. 일반적으로 마스크가 자신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방어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스탠리는 숨겨 왔던 자신의 욕망을 펼치는 적극적인 매개체로 이용한 셈이다.

마스크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로 얼굴과 사람을 의미한 언어 프로소폰(prosōpon)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이후 토스카나 지역에 건설하였던 고대 국가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페르수(Phersu)’로 표기되었고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결국 마스크와 페르소나는 같은 역사를 가진 언어인 셈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자신의 열등한 무의식(그림자)을 외부에 투사하기 위해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쉽게 설명하면 페르소나는 본인의 나쁜 점을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좋게 비추어지고 싶은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청빈하게 살아왔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돈에 대하여 탐욕적이고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마스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윤리, 도덕, 규제 등의 이름으로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들을 페르소나의 형태로 분출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가면무도회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낯선 가면으로 가림으로써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은밀한 욕망을 분출하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탈춤 역시 비천한 신분을 숨기고 양반의 탈을 뒤집어씀으로써 계급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판할 용기를 얻게 되는 통로였다.

평상시 일본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감기 증상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반면 각자의 숟가락으로 찌개를 같이 떠먹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잔을 돌리는 것이 비교적 일상화된 한국에서 자신이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인해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도 생경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정부의 마스크 정책은 보건학적인 측면보다는 수요공급의 불균형에 따라 결정되고 있어서 대국민 페르소나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를 손으로 계속 만지거나 턱까지 내리기를 반복하면 오히려 감염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조언하지만, 막상 대부분의 국민들은 마스크를 구하는 것에 힘을 다 빼서 정작 감염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체면을 우선시하고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페르소나 문화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강박적으로 마스크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이 불편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눈망울에서 집단적 페르소나를 거부하지 못하는 무력감이 느껴져서 더 안타깝기만 하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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