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구나 싶었다. 16일 한 언론사의 단독보도 내용을 보고 그랬다. KAIST 연구진이 20번을 빨아도 쓸 수 있는 마스크 필터를 개발했다. 당일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이 ‘쾌거’를 보도했다. 시판될 경우 가격도 저렴할 것이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공적 마스크를 생년 끝자리에 맞춰 구하느라 애쓰던 차였는데, 이제 한시름 놓을 것 같았다.
새로운 필터에는 ‘나노’라는 말이 붙어 있다. 10억분의 1 수준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오랫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첨단의 상징이었다. 이번 필터는 지름이 100-500 나노미터 정도인 초미세 섬유들로 촘촘히 구성돼 있다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포함된 비말이나 에어로졸을 잘 차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다 굵은 섬유들에 정전기 기능이 부여된 기존의 MB 필터에 못지않은 효과가 발휘된다고 한다. 또한 MB 필터의 경우 물에 닿으면 정전기 기능이 줄어들어 세탁 후 바이러스 차단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번 나노 필터는 물에 빨아도 섬유 상태가 잘 유지된다고 한다.
언제쯤 나노 마스크를 사용할 수 있을지 당장 궁금해졌다. 사실 지금도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여러 종류의 마스크 판매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품질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공적 마스크에 믿음이 간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과 효과를 인증한 KF 표시가 붙어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렇다면 나노 마스크는 언제 인증을 받을 수 있을까.
많은 기사에서 식약처의 인증절차가 빨리 진행된다면 4월 초에 시중에 공급될 수 있다고 해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신중론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식약처의 허가가 빨리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해 식약처 홈페이지를 찾았다. 마침 나노 마스크와 관련된 자료가 있었다. 제목은 ‘식약처, 검증된 원자재로 안전한 마스크가 제조되도록 관리하겠습니다’였다. 짧은 글이었지만, 읽은 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동시에 새로운 궁금증도 생겼다.
글이 게시된 날짜는 13일이었다. KAIST 연구진의 개발 소식이 전해진 날보다 3일 앞섰다. 이미 국내의 한 기업이 나노 필터를 적용한 마스크를 개발했으며, 식약처는 그동안 MB 필터만 인증해 왔을 뿐 나노 필터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첨단의 상징으로 불려온 용어, 나노가 문제였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나노 강국을 표방하며 막대한 재원을 투여해온 동안, 한편에서는 나노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예상치 못한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각국은 나노라는 말이 붙은 물질과 제품의 안전성을 판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 왔다. 하지만 아직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기준과 규제안이 일관되게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식약처의 역할은 마스크의 나노 필터에 대해 새로운 기준으로 인증 절차를 진행하는 일이다. 당장 원자재가 사람 호흡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검토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인증의 새로운 기준과 절차가 어떻게 마련될지 궁금하다.
18일 또 하나의 기사에 따르면, 해당 기업이 지자체와 함께 나노 마스크의 상용화를 준비하면서 최근 시범 생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KAIST의 나노 필터와 원리가 비슷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식약처가 KAIST 연구진과 신속히 인증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루빨리 마스크 사용에 불편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지만, 식약처가 과학적 인증 과정을 철저하게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결과로 나노 마스크가 공적 마스크로 보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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