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원순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자문단 위원장
현장서 잔뼈 굵은 전문가 자문 활용 못 하는 건 국가적 손해
유엔·선진국 발주 프로젝트는 투명하고 자금 떼일 염려 없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데 회사를 접어야 할지 말지에 대해 자문을 좀 받아볼 전문가가 없을까.” 예를 들어본 것이지만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업이 잘될 때도 있지만 경기침체 기술력부족 해외시장개척 부진 등 다양한 이유로 경영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창업 등은 딱히 경영의 노하우와 실패와 성공 경험담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곳이 마땅치 않다.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다.
이럴 때 한번쯤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볼 만한 곳이 전경련 중소기업 경영자문 봉사단이다. 이미 많은 중소기업과 창업자 등이 이용을 했지만 여전히 이 조직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전경련경영자문단은 자문료를 받지 않는 봉사조직이다. 필요하면 자문위원들이 지방이라도 사업체를 직접 방문해 상담을 한다. 또 한 번의 상담이나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지속적인 자문을 통해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전경련 경영자문단은 대기업의 경영 노하우와 비즈니스 경험을 중소기업과 창업자들에게 전수해 경영애로를 해소하고 기업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4년 삼성 현대·기아차 SK LG 포스코 한화 등 주요그룹 전직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40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출범했다.
그 동안 1만3,6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3만3,000회 이상 경영자문을 한 바 있다. 현재 경영자문단은 대기업 출신 185명과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29명 등이 무보수 봉사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문단은 기업비전과 중장기전략 수립은 물론 기술 생산 품질 마케팅 인사·노무 자금·재무 창업 등 다양분야에 대해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또 대학생들에게 기업현장을 체험하게 해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중·고생을 위한 진로지도 교육과 멘토링도 하고 있다.
이원순 전경련 경영자문단 위원장을 만나 자문단의 활동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삼화인쇄㈜ 등을 거쳐 ㈜타라티피에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전경련의 경영 자문단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조직인가.
“중소기업과 창업자 대상으로 무료자문을 한다. 전경련에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 자문위원들이 전부 쟁쟁한 사람들이라 자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전부 무료다. 중소기업뿐 만 아니라 창업자나 자영업자도 자문해 준다. 단기자문도 있지만 6개월에서 1년, 어떤 위원들은 매일 자문하며 회사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자문위원단에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나.
“전부 다 퍼져 있다. 출신이 서로 다르다. 경영, 기술, 연구개발(R&D), 마케팅, 해외 진출, 자금, 재무 전 분야에 걸쳐 다 있다. 국내와 해외 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통해 익힌 실력이 있다. 코트라와 무역협회가 이론적이라면 우리는 현장에서 발로 뛴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공장도 세워 보고 망해보기도 한 분들이다. 한 마디로 누구보다도 ‘돈 버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성과가 많이 난 사례가 있나.
“많이 있다. 아무래도 대기업 출신 과거 선배 위원들이 중소기업 자문할 때는 대기업 개발부서와 연결해주기도 했다.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대기업에서 테스트만 좀 해 달라고 한다. 해 보면 품질도 좋고 성능이나 가격도 좋으니 그게 연결이 돼서 연 매출 200억원에서 400억원 이상으로 성장한 회사도 있다.”
-전경련 자문 조직 활용도를 좀더 높여야 할 것 같다.
“제가 2014년에 입단했을 때는 라디오에서 광고도 했다. 중소기업을 자문해주니 요청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일반 경영컨설팅으로 알아 비용이 들어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꺼렸다. 막상 자문을 받아본 사람들은 훌륭한 자문위원을 모셔줘서 고맙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경련을 패싱한다는 논란이 있다
“그 바람에 사회적인 자산이 사장되고 활용을 못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느 나라나 정부의 역할은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목적 아닌가. 전경련도 60년간의 정책 노하우와 네트워크라는 자산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해다. 특히 중소기업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런 자문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거 자체가 위축되어 굉장히 안타깝다.”
-재정 부분에서도 힘든가.
“그렇다. 전경련이 최근 몇 년간 사업과 인적 구조조정을 해 자문단도 예산이 불가피하게 축소됐다. 지금도 교통비와 식대 등 실비가 지원되지만 예전처럼 지방에 자문을 가기는 사실 부담이 된다. 하루 빨리 전경련과 자문단의 역할이 정상화 되길 바란다.”
-대기업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일종의 재능기부를 해 주고 있는 셈인가.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자문위원들 18분이 쓴 책이 있다. 제목은 ‘마음이 젊은 사람들 이야기’다. 마음이 젊은 분들이니 노인네들 얘기하는 거다. 우리 자문 위원들은 대기업에서 30~40년 일하다 은퇴해 여기 와서 봉사한다. 앞으로 또 대기업에서도 이런 분들이 많이 쏟아질 거 아닌가. 대기업 임원들은 그 동안 사회에 빚을 졌다. 본인들도 열심히 했지만, 큰 혜택을 받은 거다. 그걸 사회에 되갚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자는 거다.”
-자영업자든지 중소기업이라든지 이런 회사를 경영한 사람들이 조금 더 강력한 기업, 강소기업 형태로 옮겨 갈 수 있는 사다리를 놔 줄 수도 있겠다.
“창업자나 중소기업이나 모두 어려우니 경영 전반에 대해 자문을 하면서 회사가 건전하게 커 나가게끔 하는 게 근본 취지다. 우리나라는 기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해외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규제가 많다. 지원책도 너무 많다. 규제도 많고 지원책도 많아 혼란스럽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중소기업정책이 나오지 않나. 그러면 정책 책자가 엄청 두껍다. 지자체도 따로 있고 각 기관이 따로 있다. 그거 설명하는 사무관이 자기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피터팬 증후군’ 현상도 나타난다. 중소기업들이 이런 지원정책들도 잘 활용하고 또 열심히 경영해서 견실하게 성장하여 중소기업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면 갑자기 이런 혜택들이 사라지고 또한 각종 공공 입찰 등에 참여자격에 제한을 받게 되니 분사를 한다든지 회사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중소기업의 범주로 들어 오려고 하는 현상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있나.
“내가 중소기업 사장을 10년 했다. 공장 하나 증설하려면 말도 못하게 까다롭다. 파주에서 경험이다. 공장을 지으려면 우선 주민들부터 설득해야 하는데 그냥 되는 게 아니라 노인회, 부인회, 청년회 다 개별로 해야 한다. 그 분들에게 선물이라도 드려야 한다. 분명히 공장 지으면 그 동네에 일자리도 생기는데 거부반응이 많다. 그 다음이 관공서다. 시청에 가서 건축과 농지과 산림과 도심지원과 등등 다 가서 일일이 승인 받아야 한다. 한 번에 승인되는 일이 거의 없다. 몇 번씩 반려돼 보완해야 한다. 다 됐다 했더니 군부대 동의가 필요했다. 황당했다. 기업하는 사람들의 기를 죽여 놓는다.”
-해외는 어떤가.
“해외에서 부품공장도 설립하고 조립공장도 해봤다. 정치인들, 국회의원들과 시장 도지사는 자기 지역의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하느냐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국회의원과 시장과 지사가 소속 당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공장 유치하는 데는 짝짜꿍이다. 한국의 대기업이 미국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고 싶다고 하면 주지사와 그 주의 상원의원들이 팀이 돼서 서로 좋은 패키지를 내 준다. 그 다음에는 각 주의 시장들과 하원의원들이 짝이 돼 자기네 시로 유치하려고 패키지를 제시한다. 세제, 자금지원혜택은 물론이고 사람들 뽑아 훈련하려면 교육훈련비가 들어가는데 그런 걸 일체 지원해 준다. 심지어 한국에서 오는 주재원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학교 교장이 특별 TF를 형성해 몇몇 교사들과 세심하게 돌본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될 수 없나.
“우리나라는 없어져야 할 옛날 법규를 그냥 가지고 있는데다 담당 공무원은 그것을 안 지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나 정부기관은 규제 1건을 도입할 때엔 기존 규제를 2건씩 없애야 하는‘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규제 개혁을 했다. 정말 잘 하는 거다. 쓰지도 않는 구닥다리 법들이 굉장히 많다. 그걸 전부 없앴으면 좋겠다는 거다.”
-중소기업 자체의 문제점은 없나.
“중소기업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대표(사장)가 전부 다 하지 않나. 대표 말이 아니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자문을 해도 대표와 해야지 임원과 자문하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문을 하고 숙제를 내 줘도 그 숙제를 사장이 직접 하지 않으면 거의 되지 않는다. 그게 제일 애로사항이다. 그걸 잘 따라오는 회사는 많은 성장이 있다. 또 중소기업에 사장의 친인척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만 그런 게 아니다. 대기업 못 가 중소기업에 오는 똑똑한 청년들이 사장 말 듣기도 힘든데 시어머니들이 많으니 갈등이 많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엄청나게 많다고 했는데.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엄청나게 준다. 그런데 중소기업 대표들이 바쁘고 몰라서 지원책을 챙길 수가 없다. 공무원 입장에서 그걸 집행을 안 하면 자기 실적이 안 난다. 그렇다고 함부로 쓸 순 없다. 그러니까 ‘작사 작곡’ 잘해서 나오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돈이 나가기 마련이다. 그럴싸하게 사업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 브로커들이 많다. 그들은 좀비처럼 지원금 만으로 회사 연명을 한다. 돈은 엄청나게 나가는데 실제 필요한 중소기업에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자문단에 전문가들이 많으니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위원들이 공동으로 자문을 할 때가 많다. 옛날 얘기를 조금 하겠다. 해외에 있을 때 아이가 놀다가 얼굴이 찢어졌다. 주말에 긴급하게 병원 응급실을 갔더니 당직 의사가 있었는데 시간을 너무 끌었다. 내가 의무병 출신이라 나라도 꿰매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형외과는 주말에 쉬기 때문에 이 의사가 정형외과에 근무하는 동료와 연락을 계속 했다. 답답해 하는 나에게 해준 그 의사의 말이 감동적이었다. 여자 아이라 그냥 꿰맸다가 나중에 커서 흉터가 남으면 지장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정형외과와 성형외과 의사에게 상담을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아주 감명을 받았다. 당시 선진국 의료수준이 높은 것이 협진때문인 것이다. 자문단에 와보니 기라성 같은 자문위원들이 자문하고 그러는데 감히 옆에 같이 끼어든다는 게 어려웠다. 나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경영을 한 거고 다른 분들은 분야가 다르다. 그래서 공동자문, 협동자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런 얘기를 못 꺼냈다가 몇 년 전에 분과장이 되면서 공동자문에 대해 많이 강조했다. 예를 들면 나는 기술과 마케팅 쪽은 자신 있는데 자금이나 재무는 아니다. 재무나 자금 쪽은 다른 전문 위원과 하면 양질의 자문이 된다. 위원들의 주특기를 파악해 2~3명이 같이 가서 자문한다.”
-공동자문의 모범적인 사례도 있나.
“연 매출 120억원 정도로 50여명의 직원들이 있는 스프링 제조회사가 있다. 중국과 경쟁이 안 되니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출신 후배 위원과 둘이서 공동자문을 했는데 그 후배는 일본통이다. 일본에서 현대자동차 R&D 연구소장도 해 기술이 아주 뛰어나고 나는 해외 마케팅과 영업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문을 했다. 그 동안 실패한 사례를 복기 하면서 문제점을 살펴봤다. 후배는 일본어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반 년 지나자 일본에서 드디어 신규 발주가 나왔다. 사실 신규 거래하기 쉽지 않은데 6개월 만에 일본에서 발주가 났으니 회사에서 너무 좋아했다.”
-창업에 대한 자문도 많은가.
“그렇다. 창업의 천국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군에 입대해서 훈련 없을 때는 창업에 대해서 공부시킨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남은 시간에는 창업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한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창업 시 80%가 실패한다. 그러면 기반이 잘 되어있지 않은 우리는 얼마나 실패하겠나. 거의 90% 이상이다. 실제 창업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말도 못할 지경이다. 창업했다가 자살하려던 청년, 이혼한 청년 등. 창업이 엄청나게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해 쌓은 경험을 빨리 정리해 다음 단계로 나가게 하는 게 이스라엘 창업 방식이다. 우리도 그걸 보고 많이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도 엄청나게 쏟아 붓고 교육도 시켜주고 창업 멘토도 보내 주면서 지원을 해 준다. 옛날보다 훨씬 낫다. 옛날에는 부모, 친구 돈을 끌어 모아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잠적했다. 취업을 못해서 억지로 창업하는 게 아니라 정말 창업의 의욕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
“ ‘국제조달시장’이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UN과 주요 선진국이 발주하는 프로젝트는 투명하고 대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 게 장점이다. 우리 품질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정보, 영어, 추진인력 부족 등으로 우리 중소기업에게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이다. 전경련 자문단이나 협회, 조합 등에서 도움을 주면 큰 성과가 기대된다.”
조재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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