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헬리콥터 드롭’까지 등장…진화하는 현대판 구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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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헬리콥터 드롭’까지 등장…진화하는 현대판 구휼정책?

입력
2020.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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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세계 최초 국가 구제…세종, 전염병 돌자 면포 배포도 

 신상 ‘재난기본소득’ 세계적 관심…각국 실험 성공 여부 주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취약 계층이 타격을 입고 내수경제가 위축되자 세계 각 나라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국민 구제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당장 필요한 물건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국민들에게 현금이나 수표를 지급하는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재난에서 국민들을 구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죠. 오늘은 재난 극복을 위한 국가의 노력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 언제부터 국가가 국민 재난을 책임졌을까? 

조선왕조실록. 류효진 기자

세계 최초 구휼제도는 한반도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고구려 고국천왕 시절 ‘진대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백성들이 궁핍하고 전염병 발병률이 높았던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때 갚도록 한 제도죠. 고려의 의창, 조선의 환곡 등으로 이어져 흉년에 수많은 백성을 끼니를 이어 가는 기틀이 됐습니다. 처음으로 국가가 법으로 국민 구제 책임을 진 제도라는 의의가 있는데요. 현대의 대출 보증, 금융 지원이 떠오르죠?

고려는 재해ㆍ질병 수습을 위해 병자를 치료하는 구제도감, 굶주림을 다스리는 구급도감 등을 일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재난 때 세금ㆍ군역ㆍ부역ㆍ형벌 등을 면제 또는 감면해주는 견감제도도 있었죠. 이재민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재면지제, 생활필수품과 주택 등을 제공하는 수한질여진대지제 등도 실시됐습니다. 최근 대구ㆍ경북 일부 지역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이처럼 생계비를 지원하고 세금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시행될 예정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자연재해나 전염병이 잦아 갖가지 구황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진휼청에서 기근에 백성을 돕거나, 혜민국ㆍ대비원 등에서 질병을 치료하도록 했죠. 중국 수나라에서 가져와 고려에서 시작한 의창ㆍ사창ㆍ상평창도 발달해갔는데요. 양곡을 비축해뒀다 비상 때 백성에게 나눠주거나 빌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상평창은 특히 물가조절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고 하네요. 사찰 등에 취사장과 식탁을 설치해 백성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시식소도 운영했다고 합니다.

 ◇ 서양의 시작은 1601년 엘리자베스 빈민법? 

서울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홍인기 기자

역사적으로 재난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의 부덕만 한탄하는 왕들도 있었는데요. 반면 세종대왕은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전염병이 돌자 약재와 처방전을 전국 수령에게 내리고 백성이 한 명이라도 목숨을 잃으면 관리들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하는데요. 전염병으로 함경도 백성이 3,000명 이상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면포 5,000필을 나눠줬답니다.

일제 시대에는 군주보다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근대적 공공부조가 최초로 제도화 되는데요. 식민 지배를 위한 것이긴 했지만 일본의 구호령을 기초로 한 조선구호령이 그것입니다. 이를 기초로 1961년에 들어서야 생활보호법, 재해구호법 등이 만들어 지고 사회보험이 자리 잡기 시작하죠. 코로나19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재난안전법은 2004년, 감염병예방법은 2010년에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게 됐어요.

서양에서는 오히려 한반도보다 국가의 재난구제 제도가 조금 늦게 자리를 잡은 편이라고 하는데요. 구휼을 정부가 아닌 교회 중심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601년에서야 정부가 구제의 책임을 지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이 등장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쳤죠. 생활 수준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대상을 정하되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지원하도록 하고, 가족 수를 고려한 수당을 지급하도록 했어요.

 ◇ 현대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라” 

게티이미지뱅크

현대 들어서도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들을 돕기 위해 갖가지 지원책이 등장했는데요. 그 중에도 하늘에서 돈을 뿌린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헬리콥터 드롭(Helicopter Drop)’이 가장 눈에 띕니다. 이 방법도 각 나라에서 여러가지 다른 유형으로 시행하고 있는데요.

먼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모든 국민에게 바로 돈을 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탈출을 위해 모든 국민에 2,000달러(250만원)씩 수표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8세 이상 영주권자 모두에게 1만 홍콩달러(155만원)를 주기로 결정했죠.

일본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인 당 평균 1만2,000엔(14만원)씩 2조원을 풀었던 경험을 살려 직접 현금 지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단 과거에 국민들이 정작 받은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면서 당장에 경기 살리는데 큰 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평가가 있었고 그래서 이번엔 얼마를 어떻게 줄 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죠. 한국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전국민 기본소득 100만원 지급’을 주장했는데요. 다만 고소득층에게서는 선 지급 후 종합소득세의 형태로 회수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소득과 재산이 적은 사람을 골라 현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호주는 코로나19 이후 연금ㆍ실업 급여 수혜자에게 750호주달러(약 58만원)을 주기로 했고, 싱가포르도 실직 또는 피해를 본 근로자에게 소득ㆍ재산에 따라 최고 300싱가포르달러(약 27만원)를 주기로 했다고 해요. 지난 13일 전북 전주시는 저소득층에게 지역은행 체크카드를 통해 52만7,000원씩 지급하는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금’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도입했는데요. 현금으로 지원되지만 전주시에서만 쓸 수 있고 3개월 이내 사용하지 않으면 남은 금액이 회수됩니다.

 

 ◇ 상품권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주거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현금을 받은 국민들이 곧바로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역화폐 등 상품권으로 주기도 합니다. 마카오는 영주권자들에게 3,000파타카(약 44만원)가 충전된 현금 카드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마카오 내 음식점ㆍ식료품점 등에서 3개월 안에 사용해야 합니다. 대만도 모든 국민에게 200만 대만달러(약 8,100원) 상당의 바우처 4종을 제공, 지정된 식당ㆍ쇼핑지구 등에서 쓸 수 있게 합니다.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해 서울시는 18일 중위소득 100% 이하 중 정부 추가경정예산 지원을 못 받는 가구를 대상으로 오는 6월말까지 사용가능한 30~50만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재명 경기지사도 사용기한이 정해진 지역화폐나 상품권 형태로 전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주자고 주장하고 있죠.

세금을 이용해 돌려받게 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7,000만 가구에 평균 950달러(약 122만원)를 세금 환급금으로 돌려줬죠. 이후 대부분이 환급금의 50~75%를 6개월 안에 썼고 경제 살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방식은 9·11테러가 일어났던 2001년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위기 탈출용으로 썼던 카드입니다. 다만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현금(수표)을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이처럼 각종 재난에서 국민들을 지키려는 다양한 실험은 현대판 구휼제도로 진화하고 있는데요. 부디 이런 노력들이 효과를 발휘해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길 바랍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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