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핵심 가치ㆍ주요 정책 알리는 ‘정당의 얼굴’ 
 과거 당 총재 등이 1번 독차지…17대부터 무조건 여성이 1번 
최근 자격 논란에 휘말린 각 당의 비례대표 1번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강동대 교수(왼쪽부터), 정의당 류호정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 미래한국당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각 당의 ‘1번 공격수’들이 줄줄이 수렁에 빠졌습니다. 최근 여야가 각각 선정한 비례대표 1번을 놓고 자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더불어민주당 비례 1번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기초생활비 부정수급 의혹을 받고 있고, 정의당 류호정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은 ‘대리 게임’ 논란에 휘말렸죠.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한선교 당 대표가 직접 영입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한 대표가 19일 미래통합당의 ‘공천 태클’에 불만을 품고 전격 사퇴를 하면서 1번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

이렇게 말들이 많은 건 총선에서 각 당의 비례 1번은 ‘정당의 얼굴’이기 때문인데요.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주요 정책 등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정당 투표의 ‘간판’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1번에게는 더욱 엄격한 검증이 요구되는데요. 과거 총선판을 들썩이게 했던 비례 1번은 누가 있을까요.

 ◇당 대표 몫에서 상징 여성 몫으로 
20대 총선에서 여야 3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박경미(왼쪽부터), 새누리당 송희경,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포럼 출범식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비례대표제는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입됐는데요. 도입 초기엔 집권 세력의 안정의석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어요. 당시엔 1인 1표제로 투표하도록 했지만, 17대 총선부터 1인 2표제가 도입됐고 여성 절반 이상 추천을 의무화하면서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죠.

과거엔 각 정치 세력을 이끌었던 거물 인사들이 전국구 1번에 배치되는 것이 관례였는데요.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1야당 민주당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전국구 1번을 가져갔죠. 15대 총선에서도 신한국당을 이끈 이회창 총재에게 1번이 배정됐습니다. 다만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관례를 깨고 14번을 자청했는데요. 반드시 14번까지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배수의 진’을 친 것이죠. 결국 13번까지만 당선돼 낙선하고 말았죠.

후보자 명부 홀수 순위에 여성을 올리고, 총 후보자 수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법이 바뀐 건 17대 총선부터입니다. 비례 1번은 홀수이니 당연히 여성의 몫이겠죠.

 ◇당의 정체성을 부각시켜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17대 국회에서 비례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배우한 기자

관건은 차별화된 인물로 유권자의 이목을 끄는 것인데요. 각 당들은 주로 감동 스토리를 부각해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하죠.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은 소아마비 장애인인 장향숙 전 의원(당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을 비례 1번에 올렸어요.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은 18대 총선에서 ‘빈민 대모’로 불리는 강명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사장을 택해 소수자 권익을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내세웠습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은 19대 총선 때 전태열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소상공인연구원 이사장(당시 참여노동복지터 대표)을 비례 1번에 올려 노동계 포용 의지를 보이기도 했답니다.

이공계 전문가들을 내세워 기초과학, 정보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정당도 점차 늘어났는데요.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장(당시 연구위원)을, 20대 총선에서 송희경 의원(당시 KT 전무)을 비례 1번으로 올렸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비례 1번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인 17대 총선 때 1번을 받고 국회에 입성했죠. 이후 그는 당내 유일한 3선 중진 의원이 됐습니다.

 ◇‘돈 공천’까지…1번 경쟁이 낳은 꼼수 
18대 총선 과정에서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서청원 친박연대 공동대표와 김노식, 양정례 의원 등 3명은 징역형을 선고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사진은 2008년 말 공판 직후 법원을 나서는 서청원 대표와 김노식 의원의 모습. 양정례 의원은 자료 사진.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비례대표 1번은 사실상 국회의원 당선이 확실시 되고, 총선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자리기도 해요. 그만큼 선발 경쟁이 치열해 갖은 꼼수가 나오기도 하죠. 매 총선 때마다 공천 방식과 의원 자질에 대한 문제도 반복됐습니다.

양정례 전 의원은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 서청원 당시 공동대표에게 ‘공천헌금’을 주고 비례 1번을 받았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네 차례에 걸쳐 총 17억원을 당에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죠. 결국 양 전 의원과 서 전 대표 모두 징역형을 선고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답니다.

그리고 현재, 각 당이 꼽은 비례 1번을 놓고 잡음이 터지면서 검증 작업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불거졌죠.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비례대표 1번은 다른 순번보다 더 세밀하게 검증해야 하는데 인물의 표면적 배경에 집착하고 사적 이해 관계만 따지다 보니 문제가 터진다”며 “향후 잡음을 최소화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했어요. 각 당들의 결정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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