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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코로나시대에 쓰는 라면레시피

입력
2020.03.2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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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에서는 요즘 최악의 소식이 속속 세계로 타전되고 있다. 사망률도 코로나19가 번진 나라 중에서 압도적 상위권이다. 전 국민이 자택에 스스로 격리하도록 명령이 발동되면서 이상 현상도 일어났다. 밀가루 값이 1㎏에 20유로에 달할 만큼 폭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파스타의 나라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만 있는 게 아니라. 수백 종의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와 소스가 사랑받는다. 면도 건면과 생면으로 나뉜다. 사재기로 건면을 구할 수 없는데다가 외부활동을 금지당하니 집에서 면을 빚어 먹는 유행이 생겼다. 원래 이탈리아 식문화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생면 파스타가 핵심이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다. 번잡한 도시 생활을 하자니, 생면도 만들지 않고 사다 먹는 음식으로 변해 갔다. 코로나19 사태는 다시 집에서 손수 만드는 생면 문화를 부활시켰다. 빵과 과자도 굽는다. 그 때문에 밀가루 품귀가 일어났다.

한국은 아이들 개학이 또 연기되면서 육아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전업으로 집에 엄마가 있는 집도 해 먹이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요리책 판매액이 갑자기 올랐다고 한다. 그 탓에 SNS는 요리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아이들에게 뭔가 매일 새로운 걸 해먹여야 하는 생존 고통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다. 굵직한 아이템은 라면의 변주다. ‘기생충’의 ‘채끝 짜파구리’가 만들어낸 유행에 이 사태가 불을 지른 셈이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는 비싸니 수입 부챗살을 쓴다거나, 닭고기를 구워 올린 볶음라면이나 아예 배달시킨 치킨을 라면에 얹어 먹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치킨은 짜장라면류 같은 볶음라면이나 국물라면에 다 올려먹을 수 있다. 바삭한 치킨이 소스나 국물을 빨아들이면서 녹진해지는 것도 별미다. 탕수육의 ‘부먹’과 같은 효과다. 짜장라면이나 그 밖의 볶음라면을 할 때, 된장이나 쌈장 한 숟가락을 넣어 비비면 훨씬 맛있다. 삶은 계란이나 프라이 추가는 화룡점정이다. 물론 칼로리는….

맑은 국물의 라면, 이를 테면 ‘★낵면’ 같은 종류에 영양을 강화시키면서 담백하게 먹는 법도 있다. 옛날 중국집에서 팔던 ‘기스면(鷄絲麵)’ 같은 것이다. 기스면은 면을 삶아 가늘게 썬 닭고기를 얹어내는 국수다. 자, 면을 삶기 전에 물을 넉넉히 잡아 소금을 조금 치고 세로로 길게 서너 번 자른 닭가슴살을 삶는다. 고기가 다 익으면, 꺼내서 길이로 찢어 놓는다. 그 국물을 걸러서, 수프를 넣고 라면을 삶는다. 생강과 마늘을 다져 조금 넣으면 더 훌륭하다. 라면이 다 끓으면 찢어 놓은 가슴살을 올리고, 다진 파와 후추를 뿌려 먹으면 된다. 간단하게 추억의 기스면이 완성된다. 중국풍 마라요리가 대히트를 하니, 마라맛 라면도 나왔다. 조금 손을 쓰자면 인터넷에서 마라소스를 사는 것도 좋다. 2,000~3,000원에 인스턴트 마라소스를 판다. 보통 라면에 이걸 살짝 넣어 끓인다. 끝. 양은 기호에 따라 조절하는데, 한 그릇에 한 큰 술 이상 넣는 것은 매워서 ‘비추’다. 사골 소스를 넣은 라면도 있다. 여기에 소고기 수육을 넣어 먹으면 훨씬 그럴 듯해지지만, 배보다 배꼽이 크다. 대신 간단하게 감자를 써 보자. 얇게 잘라 먼저 물에 감자를 삶고 얼추 익으면 라면을 넣어 끓이면 된다. 감자의 전분이 녹진하게 풀려 더 진하고, 깊은 맛이 나며 영양도 강화된다. 사골라면의 핵심은 맨 나중에 대파를 많이 올려야 맛있다는 것.

칼럼에 이런 내용을 쓰고 있는 나도 적잖게 쓸쓸해진다. 살아내자면, 낙관이 최대의 무기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헤드카피는 이랬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옛말에 있다는 이 말씀에 나는 부쩍 매달리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아이엠에프도 견뎌낸 우리 아닌가.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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