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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신체적 거리는 멀지만, 정서적 거리는 더 가깝게

입력
2020.03.18 18:30
수정
2020.03.18 18:5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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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국외국어대 외국인 기숙사에서 마리안느 불어교육학과 교수가 16일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서울 한국외국어대 외국인 기숙사에서 마리안느 불어교육학과 교수가 16일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2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시작되어 길에서도 방송에서도 ‘사회적 거리’라는 단어를 자주 보고 듣게 된다. 부연 설명이 없어도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무엇을 하자는 캠페인인지 바로 알 수 있었지만, 내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아 보인다.

본래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은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 (Robert E. Park)교수가 물리적 거리의 개념을 사람 사이의 거리에 도입한 것으로 ‘그들’이라고 표현되는 어떤 집단에 대한 친밀감이나 적대감 등의 정도를 뜻한다. 이러한 개인의 사회적 거리는 개인의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의 태도를 보여 준다. 예를 들면 나와 다른 집단인 외국인에 대해서 학교 친구로, 직장 동료로, 이웃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는지의 정도로, 측정 대상자가 가진 한 집단에 대한 친근감의 정도, 상호작용 정도의 차이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서 사용한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가능한 물리적 거리를 멀게 두자는 것을 뜻하므로 그동안 사회과학 학계에서 사용하고 이해되던 개념과는 많이 달라서 신조어에 가까운 느낌이다.

내가 그간 알던 개념과 다르게 사용한다고 해서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지금은 나를 위해, 또 타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과 ‘신체적, 물리적 거리두기’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기꺼이 동참하는 일이다.

우리 학교는 예정된 대로 3월 첫 주에 개강을 했고 첫 강의부터 지금까지 3주째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100명까지 초대해서 서로 화면을 통해 면 대 면 회의가 가능하고 실시간 채팅도 가능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데, 첫날 방학 동안 못 보았던 학생들의 얼굴을 15인치 화면으로 만나니 반갑기도 하였고 또 신기해서 재밌기도 했다. 학생들 얼굴 뒤로 이런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볼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내가 학생들이 채팅창에 올린 질문을 읽고 답을 하고 했더니 한 학생이 “교수님, 꼭 BJ(인터넷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를 의미)같아요” 하길래 “그럼 별풍선인가 그거 쏴주던지!”하며 웃기도 했다.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꽤나 지루해졌지만, 강의실에서라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학생들의 참여를 볼 수 있어서 반갑고 즐겁기도 하다. 대규모 강의실에서는 교수가 강의를 하는 도중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다시 설명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실시간 영상 미팅에서는 조금 덜 망설이고 채팅창에 질문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학교는 강의 외에 ‘공동체리더십 훈련’으로 전공과 나이 상관없이 30여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수를 한 팀으로 엮어서 1년간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훈련을 한다. 온라인 강의로 개강했기 때문에 역시 팀모임도 누군가는 방에서, 기숙사에서, 스터디카페에서 접속해서 인터넷 영상 미팅으로 만났다. 거의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자기소개하고 질문하고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미 ‘우리’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주 거의 모든 대학교가 온라인 강의로 개강을 하면서 서버가 다운되기도 하고, 연세가 있는 교수님들은 새로운 도구에 익숙지 않아서 이런저런 해프닝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기술의 발달은 신체적 거리를 멀게 두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계속하게 해 주며 우리의 또 다른 정서적 거리를 좁혀주고 있다.

타인과 접촉이 없는 고립, 외로운 상태의 지속이 다량의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만성적으로 외로운 사람은 고혈압, 면역, 질병에 취약하고 알코올 남용과 집중력 저하의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 1930년에 어거스트 코톨드라는 20대 젊은이는 홀로 그린란드 기상관측소에서 다섯 달 이상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 마지막 45일은 입구까지 막혀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극적으로 구조됐을 때 더없이 피폐한 모습이었지만 놀랍게도 정신은 건강했다고 한다. 그가 만년설 속에서 홀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았는데 혼자였지만 날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정기적으로 기상관측을 했고, 숙소 내부를 관리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외부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연대의식, 곧 그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외에는 접촉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활용해서 정서적, 감정적 거리는 가까워져야 한다. 지금은 부정적인 소식이 들리는 것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감염 사태와 직결되어 일하는 분들의 수고에 응원과 감사를 더하고, 가능한 일상을 규칙적으로 계속하며, 내 이웃과 친구와의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 가기를 나 자신과 또 우리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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