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21세기 지구 땅에,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이가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메시아가 중동의 시리아에선 모래폭풍을 일으켜 이슬람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에선 총에 맞은 아이를 살려내며, 미국에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여준다면. 온갖 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 재림 예수인가, 고도의 사기꾼인가, 논란이 번져나간다면.
지난해 말 예고편 때부터 논란을 예고했던 넷플릭스의 드라마 ‘메시아’가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주범으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 지목되고, 이만희 총회장의 ‘재림 예수’를 주장해왔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메시아’가 다시 한번 주목받는 모양새다.
10부작 분량의 시즌1만 공개된 ‘메시아’는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시작한다. 한 남자(메디 데비)가 “알라가 저들 IS를 물리치고, 구원의 손길이 올 것”이라 예언한 뒤 실제 IS가 물러나며 오랜 전쟁이 끝난다. 이 남자에겐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나고, 추종자들로부터 아랍어로 메시아를 뜻하는 ‘알 마시히’란 이름을 얻는다. 이 남자는 이스라엘로 넘어가다 체포되지만, 몰래 탈출한 뒤 이슬람ㆍ유대교ㆍ기독교 세 종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나타난다. 여기서 설교하다 총에 맞은 아이를 살려내는 기적도 보여준다.
미국의 CIA, 이스라엘의 신베트 같은 정보기관이 따라붙기 시작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알 마시히는 미국 텍사스에 불쑥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도 토네이도 속에서 그가 있었던 교회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미국 전역, 아니 세계적인 이름을 얻는다. 대중은 그를 재림 예수라 보고 따르며 기적을 바라지만, 정보 요원들은 마술사의 조카였던 그가 러시아로 망명한 무정부주의자와 내통하는 테러리스트라 여긴다.
가장 큰 포인트는 주인공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럼으로써 믿음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구성은 간단하지 않다. 긴 시즌 제작을 염두에 둔 듯 드라마 자체는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상태에서 시청자에게 미끼를 조금씩 조금씩 떨어트린다. ‘메시아’ 기획자인 마이클 페트로니는 “어떤 답도,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고 설교하지 않으려 했다”며 “시청자들이 에피소드 별로 다른 느낌과 견해를 갖게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메시아’는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세 종교의 대조적 반응, 시리아와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등의 지정학, 소셜미디어와 종교의 상관관계, 종교에 빠지는 다양한 인물들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전쟁 노근리 학살, 베트남전 미라이학살, 2008년 아프가니스탄 아지자바드 폭격 등 미군의 전쟁 범죄도 거리낌 없이 언급한다.
특정 종교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음에도 종교적 논란도 상당하다. 촬영이 이뤄진 요르단 등 중동 국가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슬람을 폄하하고, 알 마시히가 기독교의 적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평단과 시청자 반응도 엇갈린다. 미국 영화ㆍ드라마 평점 전문 사이트 ‘로튼 토마토’ 집계를 보면 18일 기준 평론가들은 44%만 우호적 평가를 내렸다. 절반 이상은 “시간 낭비”라 여겼다. 플롯은 장황한데 캐릭터는 단조롭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반 시청자는 89%가 “볼 만하다”며 추천했다.
‘메시아’는 신천지를 비롯 이단 논단이 끊이지 않으며, 종말론에 심취하고 메시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이 넘쳐 나는 한국 사회 풍경 여러모로 떠올리게 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가장 단순하게는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광신의 분위기가 확대된다는 종교적 판타지를 다룬 작품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시리아 난민과 국제분쟁 문제, 미국 정가의 복잡다단한 속내 등 다층적이고 중의적인 스토리와 해석을 담고 있는 만큼,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한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