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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더 이상의 후회는 없기를

입력
2020.03.1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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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오랜만에 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 생각과는 다르게 거의 반평생을 지난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고 특히나 그와 연관된 사람까지도 원망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선택을 합니다. ‘외식 메뉴’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대학, 직장, 결혼 상대’ 등 인생의 중대한 선택까지 그 내용이나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도 하기에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모두들 뒤돌아보면 적어도 하나쯤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큰 선택이 있을 텐데 저 또한 그런 큰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천주교 사제(司祭)가 되기 전에 미대에서 도예를 전공했습니다. 대부분의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입시에서 실기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일반계열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진로(전공)를 일찍 결정하는 편입니다. 특히나 저는 예술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다른 또래들에 비하면 꽤 일찍 진로를 선택한 편입니다. 물론 예고나 미대를 졸업하고도 전공과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저는 대학 때까지만 하더라도 진로에 대한 갈등이 없었는데 지금은 지난날의 제가 전혀 생각지도 않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 전공에 대해 전혀 갈등이 없었고 또한 지난날 전혀 생각지도 않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생각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또래의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진로를 결정했고 그래서 조금은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쏟아 부었기에 그만큼 더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렇게 선택한 사제로서의 삶을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더 시간이 흐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후회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선택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늘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내가 언제 미술을 전공했었나? 언제 예술가를 꿈꿨었나?” 싶을 만큼 잊고 살다가도 전시회를 보거나 동문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면 나의 내면 어딘가 가라앉아 있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꼭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쉬움이 있음에도 선택한 지금의 길”인 만큼 현재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연습이란 없기에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마다 신중을 기해 최선의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회나 아쉬움이 남는 선택을 적어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마음 한쪽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후회나 아쉬운 것들은 더 잊혀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후회와 아쉬움을 더 열심히 살아가는 자극으로 삼는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과거의 나의 잘못된, 혹은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 현재의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거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선택이 혹시나 잘못된 것이라 해도, 혹은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도 그로 인해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상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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