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독감 정도로 여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각이 최근 사뭇 엄중해졌다는 미국 언론들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적극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 최대 22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영국 보고서가 백악관에 전달된 데다, 코로나 여파로 그의 재선 가도에 적신호가 뚜렷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독감보다 사망자가 적다’ ‘상황을 완전히 통제 중이다’ 등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1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7~8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며 장기화 가능성을 인정했고, 10명 이상 모임을 피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생활수칙도 새로 내놨다. 이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름이 되면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날 브리핑과 관련해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조를 바꾸고 코로나19 위협에 진지해졌다”고 평가했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잘못을 깨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침울한 어조를 보였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선회에는, 정부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미국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영국 연구진 보고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17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CNN 방송은 지난 주말 닐 퍼거슨 교수의 주도로 작성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연구진의 보고서 초안이 백악관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코로나19 확산이 통제불능 상태가 될 경우 미국에서 최대 22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또 “백신 개발 전까지는 일터와 학교, 사회적 모임 등에서 과감한 조치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것이 유일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이 보고서가 전달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브리핑에서 ‘10명 이상 모임 자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는 것이 NYT와 CNN의 분석이다. 이날 가이드라인은 앞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내놓은 ‘50명’ 기준보다 강화된 것이다.
같은 브리핑에서 데비 벅스 백악관 TF 조정관은 강화된 조치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영국에서 개발된 모델로부터 얻은 새 정보’를 언급했다. NYT “미국인에게 활동을 대폭 제한하라는 새 연방정부 차원의 권고가 이 보고서에 바탕을 둔 것 같다”고 분석했고, CNN은 “영국 전염병 학자들의 불길한 보고서로 미국과 영국의 코로나19 대응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한편 AP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대해 “코로나19 위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위태롭게 하는 등 실질적인 위협이란 인식이 백악관 내부에서 커진 데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백악관 고문들에게 코로나가 대선의 중대 이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공화당 내부에서도 기존의 낙관적 기조 대신 대응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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