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팬덤의 정치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2018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문재인 대통령의 66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걸렸다.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광주의 지하철역에 광고판이 등장했다. 대통령의 68회 생일축하 광고란다. 그 분의 사진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작년 67회 생일에는 서울역 옥외전광판에 축하광고가 등장했다. “그대와 함께 만드는 미래에 단 한 번도 등 돌린 적 없음을.” 재작년 66회 생일축하 광고는 뉴욕의 타임스퀘어까지 진출했다. “당신을 지켜드리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를 믿으세요.”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기념해 더불어민주당이 출시한 문재인 대통령 미니어처가 들어간 '스노볼'. 더불어민주당 제공
 
 ◇아이돌 능가하는 정치인 팬덤 

이런 광고는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보통 저런 데서 우리는 60대 후반의 노인이 아니라 20대 초반 남녀 아이돌의 얼굴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대중음악, 스포츠의 영역에 존재하던 팬덤이 정치로 옮겨온 것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정치의 팬덤화’는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4년 미국 민주당 후보경선에서는 하워드 딘 후보, 2008년 대선에서는 오바마 후보가 팬덤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맘 카페에 둥지를 튼 문재인 팬덤의 다수는 20년 전엔 아마 H.O.T., 젝스키스, god 팬클럽 중 하나에 속하여 활동했을 게다. ‘팬덤’은 그냥 ‘팬’이 아니다. 팬이 개인으로서 제공된 문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면, 팬덤은 그 콘텐츠를 팬픽이나 팬아트의 형태로 스스로 생산하고 가공하고 공유한다. 제작사의 ‘굿즈’를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스스로 생산해 팔기도 한다. 문재인 팬덤 역시 팬아트를 창작하고 ‘이니 굿즈’를 제작해 판매한다.

팬덤은 자신들의 ‘팬 객체’(fan object), 즉 팬질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사물)과 강력한 정서적 유착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팬 객체에 대한 비판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그 비판을 그들은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비판자를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곤 한다. 문팬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일절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논리를 떠나 그 일이 그냥 ‘정서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팬덤은 ‘상상의 공동체’다. 팬에게는 팬 객체만이 중요하지만, 팬덤에게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 집단정체성이야말로 팬현상과 구별되는 팬덤의 본질이다. ‘정체성’은 본디 배타적인 것. 그 옛날 H.O.T.의 팬덤이 젝스키스나 god 팬덤과 치열한 사이버 대전을 치렀듯이, 문재인 팬덤은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의 정체성을 가지고 적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보람에 살아간다.

2017년 3월 광주 광산구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르시시즘이 과대망상으로 

팬덤은 일종의 나르시시즘 현상이다. 나르시스트는 연인에게 하듯이 제 몸을 어루만진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유아기의 자기성애에서 타자성애로 옮겨가는 과도기 현상이란다. 즉 아이는 그것을 통해 타인을 사랑할 준비를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나르시스트의 리비도가 저 아닌 외부를 향할 수도 있다. 나르키소스가 물 위에 투사한 자신의 완벽한 미모에 반하듯이, 팬덤은 팬 객체에 투사한 제 이상적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다.

팬 객체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유난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사랑은 글자 그대로 광적(fanatic)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투사된 자아이기에 애초에 그것과 비판적 거리를 취할 수가 없다. 그 팬 객체가 아이돌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나, 그것이 정치인일 때에는 아주 피곤한 일이 벌어진다. 팬덤의 사적 기호가 정치에 필수적인 공적 비판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 나라 기자 중에 문팬덤에게 ‘양념’ 당해 보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게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나르시시즘 단계의 유아는 자기를 투사한 객체를 제 몸처럼 지배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아득한 유년기의 인류가 주술로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 유아적 망상이 현실의 정치인을 만나면 꽤 현실성을 띠게 된다. 대통령에겐 권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을 지키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술적 믿음에 빠진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강원 원주시장에서 열린 거리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노란 풍선을 흔들며 그의 옆을 지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사모는 ‘지지’ 문팬덤은 ‘사랑’ 

문팬덤의 기원은 2002년 대선의 ‘노사모’에 있다. 하지만 노사모 활동은 ‘팬에 기초한’(fan based) 정치였을 뿐 팬덤정치는 아니었다. 노사모는 다른 커뮤니티와 싸우지 않았다. 남의 커뮤니티에 들어갈 때는 예의를 지켰고, 들어가서는 그곳 사람들을 ‘논리’로 설득했다. 당선된 후보가 “이제 뭐 하실 겁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감시, 감시!”라 외치며, 그를 감시하려고 모임을 해체했다. (그때 해산을 거부한 남은 소수가 문팬덤의 또 다른 줄기를 이룬다.)

문재인 팬덤은 다르다. 노사모의 토대가 후보의 철학에 대한 ‘이성적 지지’라면, 문팬덤의 토대는 후보의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유착’이다. 그러니 그를 ‘감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들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 그러니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를 옹호할 게다. 지지는 철회해도 사랑은 철회할 수 없는 것. 이것이 팬덤 정치다. 대통령도 이를 안다. 그래서 팬들의 패악질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라 미화한 것이리라.

문팬덤이 본격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 당시 이재명을 공격하는 ‘달빛기사단’과 그를 방어하는 ‘손가락 혁명군’, 두 팬덤 사이에 치열한 결전이 벌어졌다. 문팬덤은 대선후보 경선 때 자기들의 팬 객체를 공격한 이재명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가 민주당 후보로 결정되자 그들은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로 했다. 이처럼 팬덤은 정당의 이해와 관계 없이 자기들의 쾌락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팬덤정치다.

2019년 10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자들이 ‘조국수호, 검찰개혁’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국은 무엇이었는가 

이제 그들이 왜 조국을 놓지 못하는지 알 수 있을 게다. 조국은 그들에게 시효가 다해가는 팬 객체 대신에 자신을 투사할 새로운 팬 객체였기 때문이다. 팬 객체의 요건은 ‘호감성’(likeability)이다. 훤칠한 외모, 쌔끈한 학벌, 강남 사는 좌파. 조국은 팬 객체에 필요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문팬들은 그에게서 자신들의 나르시시즘적 과대망상을 계속 유지시켜 줄 새로운 팬 객체를 본 것이다. ‘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

팬덤은 지지자가 아니라 구축자다. 그들은 팬 객체를 통해 자신들의 상상계를 실현하려 한다. 그들에게 정당이란 리비도적 나르시시즘의 수단일 뿐. ‘너희는 현실을 연구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그 현실을 너희들은 나중에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팬덤의 멘탈리티다. 조국일가의 비리가 드러났을 때 그들은 ‘그 안에서 조국이 완전무결한’ 상상계를 실현하려 서초동에 모였고, 팬덤을 쫓던 민주당은 그 망상에 들러리를 섰다.

 ◇금태섭의 ‘죄’ 

이제 금태섭 의원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을 게다. 청문회에서 자기들의 이상적 자아가 훼손당할 때 그들은 자신의 전(全)존재가 부정당했다고 느꼈을 게다. 그 모욕과 상처를 잊지 않고 그들은 기어이 그 ‘배신자’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검찰을 향한 그들의 광적인 증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그들의 상상계를 파괴했다. 자기들을 살아있게 해주는 나르시시즘의 쾌락을 부정한 죄. 그 죄는 죽음으로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팬덤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따르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르시시즘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인을 직접 ‘만들려’ 한다. 김남국과 강선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팬덤은 자기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팬덤은 자기들의 이해를 대리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들의 망상을 유지시켜 줄 정당을 스스로 ‘제작’하려 한다. 열린민주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금태섭의 지역구에서 벌어진 일은 실은 모든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팬덤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친문’이나 ‘친조국’이 아니면 그 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당이 그들에게 휘둘릴수록 현실이 자신들의 바람대로 움직인다는 팬덤의 망상은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민주당은 팬덤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자위도구가 되었다. 팬덤을 쫓아 그들의 망상 속으로 따라 들어가 버렸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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