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독일 나치정권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최근 서구사회의 인종혐오ㆍ반(反)유대주의 기류와 맞물려 나치의 극우적 세계관이 미치는 해악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아마존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비롯해 반유대주의적 사고를 담은 나치 선전 도서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업체는 도매업자는 물론 소규모 판매상들에게도 “나치 도서들을 더 이상 공급할 수 없다”는 방침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히틀러가 1925년 옥중에서 펴낸 나의 투쟁은 나치 정책의 근간을 이룬 유대인 증오 등 전체주의적 주장으로 가득하다. 나치 당원들의 필독서로 1945년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독일에서만 1,200만부가 팔렸다. 2016년 1월 1일자로 70년간 독일 바이에른주가 소유한 저작권이 만료돼 독일 현대사연구소가 재출간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듬해 독일에서 8만5,000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유럽사회에 인종혐오를 향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마침 2020년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이 되는 해여서 반유대주의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지난달 영국 자선단체 홀로코스트교육트러스트(HET)의 최고경영자(CEO) 카렌 폴락은 아마존에 편지를 보내 “반유대주의 성향의 어린이 동화 ‘독버섯’ 판매를 중지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그간 인종 문제로 몇 차례 논란에 휩싸였다. 2018년에는 신나치주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아동용 가방을, 지난해에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진을 이용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 등을 판매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달에도 아마존이 제작한 미니시리즈 ‘헌터스’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한낱 흥미거리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반발 움직임도 없지 않다. 나치즘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게 하자는 취지다. 이에 아마존 측은 “우리는 반유대주의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책임을 느낀다”며 고심 끝에 내린 결정임을 강조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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