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ㆍ스페인 등도 국경 봉쇄 땐 ‘하나의 유럽’ 폐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미국ㆍ유럽ㆍ중국 등 지구촌 주요국이 잇따라 빗장을 걸고 있다. 당장은 글로벌 수요ㆍ공급망과 실물경제의 타격보다 바이러스의 외부 유입 차단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절대적인 상호 의존도를 감안할 때 이 같은 고육책의 후과는 가늠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많다. 일각에선 의도치 않게 반(反)세계화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에선 사실상의 ‘국가 봉쇄’ 주장까지 나왔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ㆍ전염병연구소(NAID) 소장은 15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늦추기 위해 14일간의 국가 봉쇄와 같은 공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각심 촉구 차원이라지만 외부와의 전면적인 단절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미 보건당국의 핵심인사이자 특히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구성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최근 생활필수품 구매량이 평상시의 3~5배에 달하는 점을 거론하며 “긴장을 풀라”고 했다. 추가 봉쇄책 대신 불안한 여론을 진정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틀 새 확진자가 1,000명 가량 폭증해 3,600명을 넘어서는 등 확산세가 가팔라지고 있어 유럽발(發) 입국 금지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추가 조치가 전격 단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유럽에선 회원국 간 자유이동을 보장한 ‘솅겐조약’이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이 이날 프랑스ㆍ오스트리아 등 5개국과의 국경을 16일 0시부터 통제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통근자ㆍ물자 이동은 예외라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솅겐조약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앞서 덴마크ㆍ폴란드ㆍ체코 등이 유사한 조치를 발표했지만 유럽 내 독일의 위상을 감안할 때 그 충격파가 상당할 것이란 얘기다. 제호퍼 장관은 “코로나19의 전파 경로 차단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EU 화상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6일 성명을 발표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30일간 필수적이지 않은 역내 입국 금지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상품과 필수 서비스는 내부 시장에서 계속 이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고 덧붙였다.
그간 내부 방역에 집중했던 중국도 역(逆)유입 방지를 명분으로 입국 장벽을 높이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징시정부가 16일부터 무증상 입국자 전원에 대해 14일간 자부담 시설격리를 의무화한 게 단적인 예다. 아직 최종 방침은 아니란 얘기가 있지만, 외국인들에게 ‘당분간 들어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산한 건 분명해 보인다. 환구시보를 비롯한 관영매체들은 “격리비용 자기부담 방침을 이해해야 한다”고 군불을 떼고 있다.
전 세계가 사실상 ‘자가격리’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시장도 멈춰 섰다. 존 덴턴 국제상공회의소(ICC) 사무총장은 “현재 각국은 국경을 닫고 화물을 돌려보내며 공급망을 재설계하고 있다”며 “전면적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가 보호무역에 돌입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 봉쇄가 해제되더라도 정치적 파장은 상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처럼 이민제한과 보호무역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선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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