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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여의사 박에스더의 생애(3.16)

입력
2020.03.16 04:5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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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자 의사 박에스더가 1876년 오늘 태어났다. 자료사진,
한국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자 의사 박에스더가 1876년 오늘 태어났다. 자료사진,

박에스더(본명 김점동, 1876.3.16~ 1910.4.13)는 한국 최초 여성 미국 유학생이자, 서재필 다음으로 서양의학을 익혀 의사가 된 여성이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그는 크리스마스 실 발행인으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1893~1991)의 비서 겸 통역사로 일하며 의술을 익힌 뒤 갑오경장이 있던 1894년 홀의 도움으로 미국 뉴욕으로 유학, 볼티모어 여성의과대학에서 1900년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그는 1887년 서울 정동 이화학당 구내에 설립된 최초 여성 전문병원 ‘보구여관(普救女館, 이화여대병원 전신)’과 평양의 신설 병원에서 환자들, 특히 여성 환자들을 치료했고, 여성 의료인력 양성과 보건ㆍ여성 교육에도 힘썼다.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사로 일하던 아버지의 네 딸 중 막내로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10세에 이화학당에 입학, 서양식 교육을 받았다. 탁월한 어학 능력으로 미국 선교사와 로제타 홀 등의 의료선교사 통역을 도맡다시피 하던 그는, 홀이 집도한 구순구개열 수술에 감복,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 보내며 두 개의 조건을 달았다. 선교사를 따라 외국으로 가는 건 안 되고, 결혼 전에는 반드시 공부를 그만둔다는 거였다. 물론 그는 그 둘 모두를 거역한 데 그치지 않고, 봉건 유교 전통이 강요한 여성상 거의 모두에 저항했다. 그는 홀의 소개로 알게 된 홀의 선교사 남편 비서 겸 전도사 박유신과 1893년 한국인 최초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의 성에 자신의 세례명을 붙여 박에스더가 됐다. 박유신은 유학하는 아내를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남편은 박에스더가 대학을 졸업하기 6개월여 전에 결핵으로 숨졌다.

귀국 후 박에스더는 셔우드 홀은 겪지 않았을 성 차별을 견디며 의료 선교봉사활동을 지속했고, 1909년 4월 ‘조선 여성 개척자’로, 아메리칸대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은 하란사(1872~1919)와 일본 메이지대(음대)를 졸업한 윤정원(1883~ ?)과 함께 고종 황제의 은장 훈장을 받았다. 23세에 혼자가 된 그는 내내 독신으로 지내다 결핵으로 숨졌다. 향년 34세.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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