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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첫 모습까지 갖고 싶어” 초판본 표지 입힌 책 찾는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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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첫 모습까지 갖고 싶어” 초판본 표지 입힌 책 찾는 독자들

입력
2020.03.16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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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소니픽쳐스코리아 제공
영화 ‘작은 아씨들’. 소니픽쳐스코리아 제공

최근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작은 아씨들’에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유독 두드리는 장면이 있다. 바로 주인공 조가 자신과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아씨들’의 출판 계약을 성사시킨 뒤 붉은색 바탕에 황금 금박이 둘러진 표지의 책 제본 현장을 상기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장면이다.

영화의 흥행 바람을 타고 영화에 등장한 초판본 표지 버전의 ‘작은 아씨들’이 서점가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RHK와 더스토리 출판사는 1868년 미국에서 출간된 초판본 표지를 씌운 ‘작은 아씨들’을 동시에 출간했다. RHK 출판사는 초판본 표지에다 본문에 영화 스틸컷 33장을 넣어 영화의 감동을 이어가는 데 주력했다. 출판사 더스토리 역시 같은 버전의 표지를 사용했지만, 표지를 패브릭 양장으로 제작하고 1896년 본문에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삽입해 차별성을 더했다. 더스토리는 1896년 출간된 작은 아씨들 2권 역시 초판본 표지를 입혀 출간했다.

1896년 '작은 아씨들' 초판본 표지를 입혀 최근 재출간된 책들. 맨 왼쪽은 RHK의 초판본 표지 버전, 오른쪽 두 권은 출판사 더스토리의 '작은 아씨들' 초판본 버전이다. RHKㆍ더스토리 제공
1896년 '작은 아씨들' 초판본 표지를 입혀 최근 재출간된 책들. 맨 왼쪽은 RHK의 초판본 표지 버전, 오른쪽 두 권은 출판사 더스토리의 '작은 아씨들' 초판본 버전이다. RHKㆍ더스토리 제공

두 출판사를 비롯해 월북과 아르테, 펭귄클래식 등 여러 출판사들이 ‘작은 아씨들’ 각축전에 돌입했지만 승자는 단연 초판본 표지를 입힌 출판사들이었다. 영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지난해 7월 출간된 월북 출판사의 ‘작은 아씨들’(공보경 번역)이 관련 도서 중 주요 서점에서 가장 널리 팔렸지만, 영화 개봉 이후에는 RHK코리아의 초판본 표지 버전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최근 재출간된 해외 고전 작품의 초판본 표지 버전. 더스토리 제공
최근 재출간된 해외 고전 작품의 초판본 표지 버전. 더스토리 제공

‘작은 아씨들’뿐만 아니다. 올해 들어 초판본 표지를 입혀 재출간된 해외 고전 작품은 ‘햄릿’ ‘벤허’ ‘페스트’ ‘거울 나라의 앨리스’ ‘하멜 표류기’ ‘동물 농장’ ‘빨강머리 앤’ ‘비용의 아내’ ‘1984’ ‘데미안’ 등 10여권에 달한다. 대부분 초판본 표지 책을 줄곧 만들어온 ‘더스토리’와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 중 ‘하멜 표류기’ ‘햄릿’ ‘페스트’ 등은 스테디셀러 책들을 풀이해 소개해주는 tvN 예능프로그램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돼 ‘미디어셀러’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5위와 7위에 각각 이름을 올린 ‘작은 아씨들’과 ‘데미안’은 모두 초판본 표지를 입힌 버전이다.

3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 5위와 7위에 이름을 올린 '작은 아씨들'과 '데미안' 모두 오리지널 커버(초판본 표지)를 입혀 재출간된 책들이다. 교보문고 제공
3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 5위와 7위에 이름을 올린 '작은 아씨들'과 '데미안' 모두 오리지널 커버(초판본 표지)를 입혀 재출간된 책들이다. 교보문고 제공

이 같은 ‘초판본 표지’ 열풍은 최근 새롭게 생긴 유행이 아니다. 2016년 윤동주 백석 정지용 김소월 한용운 등 초판본 표지를 입힌 근대 시인들의 복각본 시집이 한때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모두 장악한 일이 있었다. 당시 김소월 ‘진달래꽃’의 초판 복각본은 10만부가 팔렸고,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1955년 증보판을 복각한 시집은 15만부가 넘게 팔렸다. 한동안 서점가를 휩쓸었던 한국 고전 초판본 표지 선호 열풍이, 최근 인기 영화와 TV프로그램의 인기를 타고 해외 고전의 초판본 표지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초판본 표지 열풍이 번역 등 책의 내용적인 부분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만 집중한 상술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그러나 책을 단순히 읽을거리가 아닌 일종의 ‘굿즈’로 여기는 요즘 독자들에게, 초판본 출간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소장 만족도도 높여주는 ‘초판본 표지’ 선호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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