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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코로나 의병을 기억하자

입력
2020.03.16 04:30
수정
2020.03.16 11:18
27면
0 0
8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한 병동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8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한 병동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세상에는 역병이 돌고 있고, 자본시장에도 역사적 충격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몇 달 뒤 일정은 고사하고 다음 주 약속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앓는 봄입니다.

재택근무에 검색만 늘어 갑니다. 그런데 각국의 코로나 확산추세를 계량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만 유독 특이한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처럼 유입자를 철저히 봉쇄한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우 폭발적인 확산곡선을 보입니다. 지수함수적 증가이지요. 사람들의 공포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31번 확진자 이후 나타난 폭발적 증가세가 최근 꽤 둔화되는 추세를 나타냅니다. 중국과 같은 극단적 봉쇄정책을 쓰지 않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세계인들은 궁금해합니다. 물론 아직 낙관하거나 자랑할 단계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조마조마한 살얼음판 위에 있으니까요.

이 특이한 곡선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탁월한 검사 능력이나 인구당 병상수와 같은 지표들이 지목됩니다. 비전문가로서 이런 걸 판단할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엉뚱하게도 그 기묘한 곡선에서 ‘의병’의 흔적을 봅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많은 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갔습니다. 공중보건의들이 자신을 대구로 보내달라고 자원했고, 개원의들은 야간에 혹은 심지어 병원 문을 닫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은퇴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다시 가운을 입었습니다. 의료진들은 헌신적으로 싸웠습니다. 병원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고, 계속 삼각김밥으로 견뎠습니다. 파견된 소방관들 가운데에도 자원자가 대부분이었다고 하고, 병원으로 달려와 뭔가 돕겠다고 나선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로 항체를 추출해내서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진단키트나 마스크를 만드는 기업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달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나선 ‘의병’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위기극복이 주특기’인 나라로 버티고 있는 비결은 바로 이런 이들 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임진왜란 때, 일제 강점기에, 6ㆍ25 전쟁에서, 최근에는 IMF 금융위기에 맞설 때마다 의병이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끝날 것입니다. 든든한 의병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미리부터 한가지를 염려합니다. 일본 역사가들은 임진왜란의 패인 가운데 하나로 의병을 듭니다. 왜군 후방을 의병이 괴롭혔기 때문에 전방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선조는 임진왜란기에 나라의 목숨이 의병들 덕에 유지된다며 봉기를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선조는 승리가 명나라와 자신의 측근 덕이라고 입장을 바꿉니다. 심지어 의병장들의 인기에 위협을 느끼고 그들 상당수를 죽이거나 귀양 보냅니다. 그 결과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때는 의병의 봉기가 극히 드물어집니다. 의병이 사라진 병자호란의 결과를 우리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그리고 지금 전국 곳곳에서 영웅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병들은,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그저 평범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동네 이웃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야말로 승리의 주역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서로 존경하면서 말입니다. 의사들을 ‘돈 많이 벌기로 작정한 속물’쯤으로 비난하고, 우리나라의 기업들에는 ‘외국기업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는 식으로 서로 깎아내리는 글들이 코로나 전쟁 전보다는 크게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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