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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의 중동 오디세이] 중동 ‘화약고’에 불씨 우려되는 코로나19

입력
2020.03.15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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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이란 테헤란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8일 이란 테헤란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동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3월 11일 현재 이란의 확진자 수는 중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다.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이집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 대부분 국가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각국은 특단의 방역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란은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전역의 도시에서 이슬람 사원에서 열리는 금요 예배를 중단했다. 이라크는 확진자가 증가하자 시아파 성지인 카르발라에 위치한 이맘 후세인 사원의 문을 닫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정기적인 성지순례 기간 이외에 행해지는 순례인 ‘우므라’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확진자가 발생하자 한 달 동안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찾는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기념교회’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고, 팔레스타인 마라톤 대회도 연기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중동 산유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지난 1월 6일 배럴당 약 63달러를 기록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월 11일 현재 배럴당 약 32달러로 급락했다. 3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회의가 열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하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 감산을 주장했지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국제유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유가변동성에 민감한 중동 산유국들은 저유가로 인한 재정 압박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국제 영화제, 헤르메스 금융그룹의 두바이 투자설명회 등 예정된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연기 또는 취소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예정된 두바이 엑스포 개최가 행여 차질을 빚을까 노심초사한다. 메가 이벤트들의 취소는 중동 산유국 경제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중동 확산이 더 우려되는 것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려온 중동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 탓이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상시적 분쟁 국가, 내전 지역 등에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오랜 갈등에 노출된 분쟁 국가는 의료체계가 붕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인구 밀집지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단감염에 취약하다. 현재 시리아 북서부의 이들립 지역에는 300만명에 달하는 거주민들이 곤궁에 처해 있는데 이런 곳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다면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현재까지 이들립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확진 사례가 없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적한 것처럼 “열악한 의료체계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진단과 대응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예멘도 마찬가지이다. 후티 반군이 핵심 의료기관이 위치한 예멘의 수도 사나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확진자에 대한 진단 검사가 시행되기 어렵다. 예멘 안의 알려지지 않은 감염 가능성을 우려해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예멘과의 국경지대를 봉쇄하고, 추가적 공지가 있을 때까지 예멘 관광객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시켰다. 2016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지긋지긋한 콜레라에 만일 코로나까지 유입될 경우 상상을 초월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유럽 대륙 확산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이탈리아와 인접한 리비아 역시 내전 갈등 속에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정치적 변수가 중동 코로나19 사태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는 또 다른 이슈는 미국과 이란 간 대립 관계인 것 같다. 이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내 코로나19의 확산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란은 프랑스, 영국, 독일이 제공하기로 한 약 500만유로에 달하는 원조를 수용했지만 미국의 원조는 수령하지 않기로 했다. 워싱턴이 순수한 의도로 이란 국민을 지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3월 7일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뿐만 아니라 코로나 대응 역량을 훼손시키는 ‘의료 테러리즘’을 가하고 있다며 비난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과 이란 갈등의 정치적 문제가 이란 내 코로나 대응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가운데 코로나와의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국제사회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장기간의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 온 중동 지역에는 방역의 사각지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국익 우선의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도 중동 지역의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인도주의적 관심이 요구된다. 중동 코로나 확산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우려가 한낱 기우에 불과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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