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장ㆍ정상회의 의장 “美 여행금지 일방조치 반대” 공동성명
두 차례 세계대전 와중에도 막히지 않았던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항로가 사실상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 9시(미국 동부시간ㆍ브뤼셀 시간 12일 오전 2시) 솅겐조약에 가입한 유럽 26개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전격 발표하면서다. 유럽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만명을 넘어선 데 따른 방어적 조치라지만, 예고도 없던 갑작스러운 조치에 유럽 주요 동맹국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입국 금지 조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도 예측불가능한 깜짝 행보였다”고 전했다. 실제 디르크 바우터 주미 벨기에 대사는 “유럽에 대한 여행경고 조치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급격한 조치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5시간 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난 마리스 파엔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조차 아무 언질을 받지 못했다고 CNN은 전했다. 미 국무부는 사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선택지 중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 정확히 몰랐다”고 해명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2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조치를 비판했다.
당장 유럽 증시는 ‘패닉’에 빠졌다. 12일 장 시작 전 독일 DAX지수 선물은 6% 폭락했다. 유로존 블루칩을 모아놓은 유로스톡스 500지수 선물과 런던 FTSE100 선물도 5% 하락세를 보였다. 미셸 의장은 “경제 혼란은 피해야 한다”며 “오늘 상황을 분석해 대응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가 더 맹위를 떨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첫 번째 대국민 메시지에서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이 계속되면 인구의 6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아직 확진수 대비 사망자 비율인 치사율이 제로에 가깝지만 경계를 늦출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는 “메르켈 총리가 곤란한 진실을 알렸다”고 평했다.
11일 현재 유럽 44개국에 걸쳐 2만명 이상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탈리아는 하루 새 확진자가 2,312명이나 폭증해 누적 확진자가 1만2,500명에 달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식료품점, 약국 등 일부 주요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도 하루만에 확진자가 각각 500명 이상 쏟아지면서 두 나라 모두 총 확진자가 2,000명대에 올라섰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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