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지난 1월 첫 주 방학식을 한 뒤 꼬박 10주가 지났다. 개학하려면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하니 겨울방학이 3개월에 육박해간다. 공교육의 방과후학교도 사교육의 방학특강도 거의 없어 엄마들에게 1년 중 가장 힘든 달로 꼽히는 2월이 3주나 연장된 셈이다. 이 집 저 집에서 엄마도, 아이도 너무 지친 나머지 곡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과학이 그렇게나 발전했다는데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때문에 온 국민의 일상이 기약 없이 멈춰서야 하나 싶어 답답하다.

2년 전 이맘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와 함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해안도시 윌밍턴에서 지내는 동안 학교가 갑작스레 일주일 휴업한 적이 있었다. 눈을 본 적 없는 사람이 적지 않을 만큼 따뜻한 지역이라 이례적인 겨울폭풍이 몰고 온 8~9㎝ 강설에 도시 전체가 마비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 뒤엔 혹한이 들이닥쳤다. 눈이 온 적이 거의 없으니 제설장비도 부족해 쌓인 눈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온 도로가 빙판이 됐다. 시민들은 식료품을 사재기해 집에 틀어박혔다.

당시 윌밍턴은 최저 기온 영하 12도로 22년만의 신기록을 세웠다. 윌밍턴뿐 아니라 미 북동부의 강설과 기온 기록이 겨울폭풍으로 싹 경신됐다. 심지어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기온이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보다 일시적으로 낮은 날도 있었다. 북극의 찬 공기를 붙잡고 있던 거대한 공기 덩어리(극 소용돌이)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세력이 약해지면서 찬 공기가 미 동남부까지 밀려 내려온 탓이었다. 지구온난화와 극 소용돌이의 관계를 연구해온 과학자들의 경고가 현실에서 입증됐다.

겨울폭풍이 지나가자 윌밍턴에선 눈이 많이 내려도 평소처럼 도로에는 차가 달리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미 동남부가 더 이상 겨울폭풍의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북부처럼 ‘스노우 플랜’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기상과학이 겨울폭풍을 정확히 예측해냈어도 스노우 플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시민들은 경험으로 깨달았다.

유전자를 바꿔 생존력을 높인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 가능성 역시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경고해왔다. 실제로 2002년 출현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독감),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은 모두 변종 바이러스다. 그때도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고, 일상은 엉망이 됐다. 메르스 확산 당시 3000여곳 가까운 국내 학교가 휴업했다.

그나마 신종 플루 유행 때는 이전까지 독감 백신을 생산해온 제약회사들이 기존 기술과 설비를 응용해 비교적 빠르게 새 백신을 만들어냈다. 같은 종류 바이러스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인 사스와 메르스 때는 마땅한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다. 당시 여러 과학자들과 의료기관, 제약업체들이 앞다퉈 약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는데 상용화 성공 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일부 의미 있는 진전이 있긴 했지만, 이미 유행이 지난 감염병의 약 출시를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연구기관이나 기업은 없었다.

결국 다시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우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감염됐다고 확진 받은 환자 수가 메르스 당시 기록을 넘어선 지 한참이고, 사망자 기록도 연일 갱신되고 있다. 그 와중에 과학자들과 제약업계는 또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호언장담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 유행이 지나가면 약 출시는 다시 흐지부지될 것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에 공감이 간다.

인류가 바이러스와 공존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변종의 위협은 피하지 못한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 정부가 말하는 ‘방역 모범’은 있을 수 없다. 설사 이번에 잘 대처했다 해도 다음엔 상황이 달라질 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범용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고, 정부는 더 나은 방역 체계를 구축하며 꼼꼼한 ‘바이러스 플랜’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변종 바이러스 유행 때도 회사와 학교가 문을 닫는 일상 마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얼마 전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한 엄마가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보통의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고 썼다. 이상기후를 예측하고, 변종 바이러스를 경고하는 데 머무른 과학은 국민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가 물러간 뒤 정부가 방역 자화자찬을 되풀이할 지, 과학과 손잡고 바이러스 플랜을 짤 지 지켜볼 일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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