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감염 위험에도 마스크 실종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보이스채팅을 해야 하니 마스크 쓰긴 어렵죠. 헤드셋이야 사장님이 잘 닦지 않을까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고등학생 이모(17)군은 휙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군은 나란히 앉은 친구 두 명과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헤드셋)으로 연신 대화를 나눴다. 쓰고 왔던 보건용 마스크는 컴퓨터 옆 구석에 내팽개쳐 있었다. 게임에 열중하는 학생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걱정되지 않냐”고 묻자 “들어올 때 손소독제를 사용했고 다닥다닥 붙어 앉지 않아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의 신종 코로나 확진자 4명이 같은 PC방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난 뒤에도 PC방 이용자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정부는 집단감염이 벌어진 ‘구로 콜센터’처럼 좁은 실내에서 수십 명이 북적대는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뒤늦은 대책을 마련했다.
12일까지 이틀간 서울 시내 PC방 여섯 곳을 확인한 결과 이용자 대부분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찾기는 어려웠다. 성동구 한 PC방에선 10대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어 둔 채 대화하며 게임을 했고, 카운터의 직원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송파구의 한 PC방에서는 이용자 50여명 중 달랑 5명만 마스크를 착용했다. 얼굴과 밀착하는 헤드셋은 비말(침방울)로 인한 전염 가능성이 높은데도 각 좌석에 비치만 됐을 뿐 이용자가 바뀔 때마다 소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실내 방역을 강화했다는 PC방은 여섯 곳 중 한 곳뿐이었다. PC방 입구와 컴퓨터 화면에 ‘출입 시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 사용’ 등을 공지한 곳도 있었지만 이런 수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제재하지도 않았다. 마스크 착용을 안내 중인 PC방의 직원은 “안 그래도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스트레스 풀러 오는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안 쓴다고 뭐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PC방과 함께 고위험구역으로 지목한 노래방 중에서는 매일 소독을 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감염 우려로 ‘개점휴업’ 수준의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중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A씨는 “하루에 12시간씩 나와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마이크를 소독한다”고 설명했다.
콜센터와 PC방 등이 집단감염의 온상으로 부상하자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이날 다중이용시설 집중관리 지침을 발표했다. 콜센터 노래방 PC방 스포츠센터 종교시설 클럽 학원 등이 집중관리 시설에 해당한다. 각 사업장별 감염관리 책임자를 지정하고 보건당국과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게 골자다.
뒤늦게 대책이 나왔어도 실내에서는 아예 공용물품에 손을 대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카페에서 진동벨 받는 걸 거부하고, 식당 테이블에 달린 호출버튼조차 만지기 꺼려해 직원을 직접 부르는 식이다. 아예 소독제를 갖고 다니며 타인의 손이 닿는 물건을 직접 닦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면 실내 공용물품에 대한 소독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마이크나 키보드 같은 무기물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최대 3, 4시간 생존한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며 “공용물품을 개인별 물품으로 교체하거나 안 된다면 철저하게 소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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