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개 국가·지역서 제한 조치
공관 직원들 ‘24시간 대응’ 가동
최근 ‘한국인에겐 도착비자(사증) 신규 발급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아시아권 A국이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알린 건 시행까지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지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B 영사는 공항까지 내달렸다. 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출국해 A국으로 날아오는 한국인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확인 결과 도착비자 발급 중단 조치 적용 직후인 오전 1시 착륙 비행기에 한국인 한 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총영사관은 즉각 A국 이민국 설득에 나섰다. “조치를 시행하기 전 이미 비행기가 이륙했으니 1시간 차이로 도착하는 한국인의 입국은 허용해달라”고 설득했고 결국 이 탑승객은 무사히 A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사조력을 제공하는 해외 주재 한국 외교공관은 평소에도 24시간 가동 체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엔 더 비상이 걸렸다. 전세계 곳곳에서 한국 발(發)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국민이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사,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땀을 흘리고 있다.
외교관들은 먼저 해당 국가의 조치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직접 공항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1일 오후 6시 기준 입국 금지 49개국, 시설 격리 18개국 등 총 117개 국가ㆍ지역이 조치 중인데 나라마다 조치가 제각각이고 발표 내용과 실제 적용 상황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특히 조치 시행 일자가 목전일 땐 전화나 이메일로 답을 기다리면 대응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며칠 말미가 있더라도 실제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 확인도 필요해 현장에 나간다”고 전했다.
일본이 9일 0시부터 한국 발 입국자 14일 격리 조치를 시행하자 현지 대사관은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신속대응팀을 파견했다. 일본은 한국에서 오는 입국자에게 ‘대중교통 이용 자제 요청’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자국민은 대중교통을 타게 했고 한국인 이용은 막았다. 마침 현장에 나간 주오사카총영사관의 C 영사는 한국인 유학생을 자신의 차로 직접 시내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각 국 정부 조치와 지방의 지침, 현장의 대응이 다른 경우도 다수였다. 인도네시아는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발 입국자에게 영문 건강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공항에서 근무하는 이민국 직원들이 이를 무비자입국(사증면제조치) 정지로 생각해 비자를 요구하거나,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입국한 한국인에게도 건강확인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현지 공관 직원들이 자카르타와 발리 공항에 나가 한국인 입국자를 지원하고 있다.
필리핀 앙헬레스시는 10일 오후 “11일 0시부터 한국, 중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를 방문한 외국인의 진입을 막겠다”고 알려왔다. 대구ㆍ경북 방문자만 입국을 금지한 필리핀 중앙 정부 조치와 다른 자체 통보였다. 주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외교부, 관광부, 이민청, 내무자치부 등에 협조를 요청해 앙헬레스시도 정부 지침을 따르게 했다.
이미 시설에 격리 중인 교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제일 먼저 한국인 격리 조치를 시행한 웨이하이시를 담당하는 칭다오총영사는 조치 이후 매일 공항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웨이하이시에서 발열 증상이 없는 사람은 자가격리를 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총영사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전언이다.
최근엔 각 나라마다 한국인 해외 여행객이 현저히 줄어 현지에 도착하는 비행기에는 자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더 많은 상황이다. 다른 당국자는“한국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영사조력을 제공하는 게 외교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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