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인권 안전 환경 등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공공기관을 재편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제출했다. 그런데 현실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문중원 기수의 자살로 부조리가 세상에 알려진 한국마사회가 대표적이다.
마사회는 공공기관인지 몰랐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연간 7, 8조원의 매출을 올리지만 경마 관람보다는 베팅을 중심으로 한 도박경마인 화상경마장의 매출 비중이 70%가 넘어, 건전한 ‘스포츠로서의 경마’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국의 도박 중독 유병률은 해외보다 2~3배 높다.
문중원 기수는 유서에 조교사와 마주, 마사회라는 다단계 갑질 구조 속에서 부정행위를 지시받거나 건강조차 위협받는 경주를 해야 했다고 고발했다. 고인은 조교사 개업 심사인 마사대부심사가 마사회 임원과 친분이 없으면 통과할 수 없는 구조에 절망했다. 이러한 부조리로 목숨을 끊은 기수와 말 관리사들이 부산ㆍ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째다.
이외에도 마사회 직원들의 도박이나 사행성 증가 등은 국정감사나 감사원 감사에서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2018년 정유라 승마 특혜와 서울주차장 구축 과정에서의 비리나 저성과자 인권 침해 등 마사회의 적폐 비리를 조사한 ‘적폐청산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러나 미공개로 그쳤을 뿐 아니라, 관련자 최고 징계는 정직 3개월(1건)이어서 부패 청산에 미온적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고객만족도 평가 조작,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국민감사청구 대상이 됐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는 사적 이익(private gain)을 추구하기 위해 부여받은 권력을 오용하는 행위’라고 했다. 부패는 단지 특혜일 뿐 아니라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한다. 예를 들어 뇌물은 조직 운영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구성원의 승진이나 징계 등 불이익을 주는 직접적인 인권 침해다. 또한 간접적으로 부정행위로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공평한 기회를 뺏는다.
2019년 3월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발생 책임이 확인되면 기관장의 해임까지 건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 나아가 전문성도 없는 정치인을 기관장으로 임명하는 관행도 바꾸지 않았다. 유엔 반부패협약 18조에 명시된 ‘영향력 거래’(trading in influence)에 비춰볼 때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마사회는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해 100일이 돼서야 합의하더니, 고인의 영결식 당일 합의 파기를 시도하는 물의를 일으켰다. ‘마사회 적폐청산 운동’을 포기하지 않으면 합의서 공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공공기관임에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려는 태도는 ‘협치’라는 사회적 가치에도 반한다. 결국 여론에 못 이겨 합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렇듯 공공기관의 개혁은 내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공공기관답게 마사회의 묵은 때들을 벗기기 위해 시민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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