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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융통무애(融通無碍)] ‘신뢰’라는 항바이러스제

입력
2020.03.11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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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에 포위된 시민들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봉쇄지폐는 유통될 수 없다. 적군이 아닌, 공포감의 포로가 되어 금화나 은화로 사재기를 하다가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적군에 포위된 시민들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봉쇄지폐는 유통될 수 없다. 적군이 아닌, 공포감의 포로가 되어 금화나 은화로 사재기를 하다가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분야에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화폐사’를 남긴 경제학자 애나 슈바르츠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25세에 첫 논문을 발표한 뒤 97세로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몇 개나 썼는지 알 수 없다. 올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그녀처럼 되려면 2092년까지 논문을 써야 한다.

철학가 레이먼드 스멀리언도 그 저서를 셀 수 없다. 그는 95세의 나이까지 바쁘게 글을 쓰다가 불현듯 죽음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미완성인 원고로 생의 마지막 저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약간의 기운이 더 남았다. 남은 힘을 쥐어짜서 원고를 마무리한 뒤 미안하다는 듯 발표하고 타계했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소설가 제롬 샐린저의 경우 32세에 쓴 ‘호밀밭의 파수꾼’ 이외에는 잘 알려진 작품이 없다. ‘앵무새 죽이기’로 유명한 하퍼 리도 그녀의 첫 소설 이외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하나의 걸작으로 기억된다.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퍼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학생 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 붙잡혀 3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45년 ‘포로수용소의 경제구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에 따르면, 포로수용소의 연합군 포로들은 담배를 화폐로 대용하면서 내부의 국제 질서를 스스로 구축했다. 정부 없이 잘 굴러가는 시장경제모델 그대로다. 그 논문에 만족한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를 채용했다. 레이퍼드는 대학생 때 쓴 단 한 편의 경험담 때문에 박사들이 즐비한 IMF에서도 평생 스타 직원 대접을 받다가 은퇴했다.

하지만 포로수용소 안에서 담배를 돈으로 쓴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쟁 중 폐쇄된 사회에서 엉뚱한 물건을 돈으로 쓴 사례는 옛날에도 많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아닌가!

옛날 서양 전쟁의 전형적인 모습은 공성전(攻城戰)이다. 성과 요새를 담보로 한 싸움이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철옹성 앞에 도착한 공격군은 도랑부터 팠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돌덩이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전투는 삽질로 시작됐고, 그때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17세기 지중해 크레타섬에서 치러진 칸디아성 전투는 한 자리에서 21년을 끌었다.

반면 공성전의 인명 피해는 적었다. 공격군이 어느 한 곳을 집중 공격하여 마침내 수비가 뚫리면, 곧장 살육전으로 돌입하지 않았다. 공격군은 성 안을 향해 정중하게 항복을 제안하고, 수비군은 대체로 이 제안을 따랐다. 이때의 항복은 수치가 아니라 더 이상의 희생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용단이자, 적군과 주민을 향한 예의였다.

따라서 포위된 주민들은 공성전이 시작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평상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외부와 단절되는 것만 빼면, 성 안의 생활은 평온했다. 오늘날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속에서도 우리들이 침착하게 시간과 싸우는 것처럼.

바깥세계와 단절된 성 안에서 맨 처음 발생하는 문제는 무기나 식량의 고갈이 아니었다. 금화나 은화가 자취를 감추는, 화폐의 퇴장(退藏)이었다. 그래서 성주나 시장은 여러 가지 금속들로 조악한 주화들을 대충 만들어 뿌렸다. 일종의 지역화폐였다. 인쇄술 발명 이후에는 포위된 성 안에서 지폐를 발행했는데, 이를 봉쇄지폐(siege note)라 한다.

전쟁 중 지역화폐 또는 봉쇄지폐의 예는 많다. 네덜란드의 레이던, 이탈리아의 만토바, 독일의 콜베르크 등 유럽지역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의 식민지 하르툼(수단)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마페킹(남아공), 심지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도 발행되었다.

적군에게 포위된 지역의 봉쇄지폐는 비공식 화폐라는 점에서 독일 포로수용소 안의 담배와 다르지 않다. 담배는 상품으로서 내재 가치가 있지만, 적군에게 포위된 지역의 봉쇄지폐는 내재 가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법화도 아니었다. 오로지 성주와 시장이 다스리는 시스템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토대로 유통되었다.

이처럼 전쟁 중의 작은 사회에서도 신뢰가 유지되었다. 그것이 지구전을 견딘 원동력이었다.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국가 번영을 좌우한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신뢰가 사회적 자본임을 강조한다.

신뢰는 희망에서 나온다. 적군에 포위된 시민들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봉쇄지폐는 유통될 수 없다. 적군이 아닌, 공포감의 포로가 되어 금화나 은화로 사재기를 하다가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공포감의 끝은 자중지란(自中之亂)과 자멸이다. 하지만 “큰 인명 피해 없이 봉쇄는 곧 풀릴 것이고, 세상은 다시 정상이 된다”는 희망과 여유가 있어서 봉쇄지폐가 가능했다. 실제로 당시 유통되던 봉쇄지폐에는 “평화가 찾아오면 금화로 다시 갚겠다”는 지급인의 약속이 적혀 있다.

희망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든다. 바이러스의 공격도 마찬가지다. “큰 인명 피해 없이 위기는 곧 풀릴 것이고, 세상은 다시 정상이 된다”는 희망과 여유가 사회를 지탱한다. 그것은 남이 아닌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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