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러스크 서한’은 미국무성의 비밀문건에 불과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기고] ‘러스크 서한’은 미국무성의 비밀문건에 불과

입력
2020.03.12 09:03
0 0

과거 독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바위섬이었지만,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의 고문헌에 의하면, 고대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관할 통치하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그런데 현재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근거는 단 2가지이다. 하나는 1905년 일본이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주인이 없는 섬을 일본영토에 편입했다고 하는 ‘시마네현고시 40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정하여 1951년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결정되었다고 하는 ‘러스크 서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오늘날 한국이 독도를 관할 통치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이 주장하는 시마네현 고시40호와 딘 러스크 서한 모두가 사실이 아님을 말해준다.

지금부터 러스크 서한에 대해 알아보겠다. 1951년 9월8일 패전국 일본을 상대로 48개국의 연합국이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정식으로 과거 일제의 영토에서 분리되어 한국을 독립시켰다. 한국영토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일제의 영토에서 분리한다고 규정되었다. 이 규정에는 독도 명칭이 없다. 그래서 일본은 독도가 일본영토로서 처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대일평화조약은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되어 초안을 작성하고 그 다음에 극동위원회(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필리핀, 캐나다) 11개국의 의견으로 조정했다.

당시 미 국무성 내에는 독도의 한국영토론자와 일본영토론자로 나눠졌다. 대표적인 일본영토론자는 일본인 부인을 두고 있던 친일파인 미국무성 소속 주일정치고문 시볼드(William Joseph Sebald)였다. 시볼드는 1949년 11월 미국무성에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의견을 제안하여 미국 1차-5차 초안에서 한국영토였던 독도가 갑자기 ‘6차초안’에서 일본영토로 변경되었다.

1951년4월23일 대일평화조약 전권대사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일본을 방문하여 요시다 총리에게 독도가 한국영토로 표기된 ‘영국 3차초안’ 지도를 확인시켰다. 이때도 시볼드는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주장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이 서로 의견이 달라 합동초안을 만들었다. 1951년 5월 제1차 영미합동초안을 만들어 한국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기존의 일본영토 조항을 없애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하여 독도 명칭을 제외시켰다. 독도가 제외된 경위를 보면, 연합국 실무자회의에서 뉴질랜드가 독도가 한국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초안에 의해 후일에 일본이 분쟁을 일으킬 여지를 남기는 것이라고 경고하여 일본이 영유권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영연방국가의 입장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측은 ‘분쟁지역으로 보이는 무인도는 소속 결정을 유보하고 유인도는 신탁통치하다’라는 방침을 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으로 그 외에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해방과 더불어 SCAPIN677호(1946.1)에 의해 독도를 실효적으로 관할 통치해오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6월14일 ‘영미합동(제1차) 개정초안’을 작성하여 한국영토 조항과 일본영토조항을 통합하여 ‘제2장 영토부분’ ‘제2조 a항’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하고, 제2차 영미합동초안(1951.7.3)에서 독도의 명칭을 제외하여 1951년 7월 9일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 13개국에 송부했다. 당일 덜레스는 주미대사 양유찬에게 제2차 영미합동초안을 전달하면서 협상(서명, 참가)국의 지위를 부정했다.

이때 1951년 7월 한국영토론자 보그스(미국무부 정보조사국)는 피어리(미국무부 동북아시아담당)에게 독도를 한국영토로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양유찬 주미대사도 1951년 7월19일 덜레스와 면담했는데, 덜레스는 “독도가 병합 전에 한국의 영토였다면 독도를 한국 영토로 하는데 문제가 없다”라고 했다. 희망을 갖은 양유찬 주미대사는 8월2일 정식으로 미 국무성에 “한국 및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및 파랑도”의 영유권을 요청했다. 그런데, 1951년 8월9일 딘 러스크(Dean Rusk)는 양유찬 주미대사에게 “독도, 또는 타케시마, 리앙쿠르 바위로 알려진 섬에 대해, 통상 무인도인 이 섬은,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한국의 일부로서 취급되었던 적이 전혀 없고,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 지청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 섬은, 일찍 한국에 의한 영토 주장이 있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라고 하여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했다. 딘 러스크가 한국의 영유권을 부정했지만 이미 2차 영미합동초안에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있었다.

훗날 1954년 8월 밴 플리트(Van Fleet)대사가 귀국보고서에서 러스크 서한에 대해 “미국은 일본영토라는 입장이지만, 두 나라의 논쟁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비밀로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처럼, 주한미대사관은 물론이고 주일미대사관이나 일본정부에도 알리지 않았던 비밀문건이었다. 사실 대일평화조약 체결 이후, 주한미대사관과 주일미대사관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그려진 “일본영역참고도”(1951.8)처럼 한국영토로서 다루었다.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