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커피 병해와 전쟁 중인 과테말라 농민들 
새롭고 다양한 품종의 커피가 인위적으로, 또 자연적인 변이로 생성된다. 과테말라 현지 농장에서 진행된 품질 평가를 통해 새로운 실험으로 탄생한 다양한 커피들의 향미를 즐길 수 있었다. 최상기씨 제공

아티틀란 호수의 풍광을 눈에 가득 담고 온 이튿날 아침,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산 후안 사카테페케스(San Juan Sacatepéquez)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안티구아에서 동북쪽으로 1시간쯤 차로 이동해 약속한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 입구에서 체크한 고도계는 1,950m를 가리켰다. 적도에서 다소 떨어진 위도를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경비가 삼엄했다. 기관총을 든 경비원이 큰 철문을 두 개나 열어주고 나서야 농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흡사 군부대 정문 같은 출입문은 무장한 갱들이나, 강도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출입문의 분위기와 달리 농장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날렵해 보이는 경주용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정갈하게 가꾼 정원은 야외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1910년에 세워진 이 농장은 대를 이어 백 년 가업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선조대에 지어진 집은 고색창연한 외관 그대로 농장 하우스와 창고로 이용되고 있었다. 175㏊(헥타르, 약 53만평)에 달하는 이 농장은 과테말라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하는 규모다. 농장은 전체 면적의 3분의 1정도에서만 커피를 재배하고, 나머지는 임업과 삼림 보전을 위해 남겨두고 있었다.

농장주인 산체스(Sánchez)씨와 픽업 트럭을 타고 농장을 돌아보았다. 이 농장은 마치 커피 연구소가 아닐까 착각할 만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수질 관리였다. 환경적 측면에서 농장의 수질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한 잔의 커피(20g)를 마시기 위해서는 약 350리터(ℓ) 정도의 물이 소모될 만큼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물이 필요하다. 특히 커피 열매를 수확한 다음 이를 가공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지하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사용된 폐수는 벗겨낸 커피 과육이나 점액질과 함께 하천 등으로 자연 방류되면서 수질을 오염시킨다.

차에서 내린 산체스씨는 허리춤까지 오는 수풀을 헤치며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를 따라 풀숲으로 들어가보니 늪처럼 보이는 연못이 나온다. 커피 과육을 벗겨낸 물을 1차적으로 담그는 자연 수조다. 수조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산성도가 떨어진 물은 수문을 통해 2차, 3차 수조로 옮겨 저장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정화된 물은 다시 농업용수로 재활용된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산체스씨는 농장에서 사용하는 한 방울의 물도 자연 하천으로 방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확철이 지난 탓도 있지만, 커피 농장을 방문할 때면 항상 느껴지는 커피 부산물의 썩는 냄새가 이 농장에서는 전혀 나지 않았다. 친환경적인 수질관리 시스템 덕분이다.

커피나무들은 수십개의 구역으로 나눠 재배되고 있었다. 1회에 생산되는 제품 단위(로트) 별로 정해진 구역에는 품종을 적은 푯말이 적혀 있었는데, 수많은 커피 품종이 커피 종자 연구소를 방불케 했다. 버번이나, 카투아이, 파체 등의 재래 품종부터 빌라사치, 테키식, 히브리도 산프란시스코, 자바, 게이샤, 블루마운틴, SL-28 등의 외래종, 과테말라 커피 협동조합인 아나카페(Anacafe)에서 개발한 신품종들, 심지어 카페틸로(Capetillo), 엘 인헤르토(El Injerto) 등 과테말라의 유명 농장에서 얻어온 묘목들까지 구역을 나눠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커피 나무 위에는 항상 그라빌레아나, 실크오크 등의 토착종 차광나무들이 커피로 향하는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있었다.

과테말라는 그늘 재배에 관한 한 교과서적인 농법을 하는 나라다. 무려 100여종의 차광나무를 활용하는데, 햇빛을 차단하는 목적 외에도, 다양한 용도에 따라 다르게 활용된다. 3년 이하의 어린 커피나무를 위해서는 비교적 키가 작은 간둘(Gandul)이라는 나무가 주로 쓰인다. 이 나무의 수령은 3년인데 이 나무가 죽고, 커피나무도 웬만큼 키가 크면 주로 그라빌레아를 차광나무로 이용한다. 콩과 식물인 잉가(Inga)는 장작으로 인기가 많아서 커피농장 주변에는 잘려진 잉가나무가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과테말라의 경우 일반 주택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80%를 목재에서 구하는데 잉가는 장작용으로 인기가 높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는 과두아(Guadua)라는 이름의 남미 대나무를 많이 심는다. 산악지역의 커피 농장은 급경사를 이룬 곳이 많아 우기 때 내린 비로 산사태가 나기 쉽다. 농민들은 뿌리가 강한 과두아를 커피와 함께 심어 흙이 소실되는 것을 예방한다.

농장주인 산체스씨가 포마 곰팡이의 공격을 받아 갈색으로 변해버린 커피 잎사귀를 보여주었다. 포마는 커피 녹병에 이어 과테말라 커피 농장을 괴롭히는 새로운 곰팡이다. 최상기씨 제공

농장의 이곳 저곳을 돌며, 유쾌한 설명을 이어가던 산체스씨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차에서 내린 그는 커피 밭 사이로 들어가 잎사귀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잎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포마 곰팡이(Phoma Fungus)라는 이름의 전염병이 공격한 것이다. 산체스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농장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병에 걸린 커피나무를 베어내라는 얘기인 듯 했다. 포마는 커피나무 잎과 열매를 공격하는 토양 곰팡이다. 곰팡이 공격을 받은 커피의 잎은 갈색이나 검은색 반점이 생기고, 곧 다른 나무로 빠르게 전염된다. 커피나무가 개화하거나, 열매가 채 성숙하지 않을 때, 그리고 춥고 습하며 바람이 많은 기후에서 잘 생긴다.

포마 곰팡이는 익숙한 전염병은 아니다. 그보다 몇 해 전 커피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널리 알려진 커피 녹병(Coffee Leaf Lust, CLR)이 좀 더 낯익다.

2013년 과테말라에 커피 녹병이 유행했다. 이 병에 걸린 커피나무는 잎사귀 아래쪽에 마치 녹이 슨 것처럼 노란색이나 주황색 또는 갈색의 반점이 나타나는데, 잎사귀에 반점이 퍼지면 잎은 떨어지고, 광합성을 하지 못한 나무는 결국 말라 죽는다. 사실 녹병은 언제든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병으로 커피나무에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날씨가 습해지는 등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생기면 곧바로 나무에 파고든다. 인간이 신체리듬이 깨지거나, 환절기의 변화하는 날씨에 적응하지 못할 때 감기에 드는 것과 비슷하다. 확산 속도가 빨라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나무를 베어내 태우거나 땅속에 묻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을 만큼 치명적인 병이다.

일찍이 커피 녹병은 19세기 말 당시 대표적인 커피 생산지 중 하나인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을 덮쳤다. 이로 인해 커피나무의 90%가 고사됐고, 그 이후로 실론은 더 이상 커피를 재배하지 않는 땅이 됐다.

최근 들어 녹병은 중남미 지역으로 넓게 퍼졌다. 2008년 남미, 2011년 중미의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처럼 고도가 낮은 산지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점차 높은 고도로 녹병의 확산을 부추겼다. 2013년 안티구아에서 시작한 녹병은 북쪽지역인 우에우에테낭고의 고산지대까지 번지며 과테말라 전역을 강타했다. 커피 재배지의 약 70 %에 녹병이 확산되자 과테말라 정부는 농업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대부분의 커피나무에서 나뭇잎의 80%가 말라버렸고, 전혀 잎이 없는 나무도 있었다. 과테말라 정부는 살충제 구매를 위해 약 160억원의 재정을 응급지원 했으나, 과테말라의 커피 생산량은 30%가량 줄어들었고,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과테말라뿐 아니라 중미 전역을 덮친 녹병으로 중미 각 국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 지역의 커피 생산량 감소는 전 세계 커피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 말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파운드당 110센트 수준으로 거래되던 커피 가격은 불과 3개월도 안돼 200센트 이상 2배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커피나무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커피 녹병은 아직도 이곳 저곳에서 생겨나고 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치료 방법론과 효과적인 살충제 덕분에 대규모 확산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녹병보다 더 지독한 새로운 곰팡이균이 등장했다. 산체스씨는 농장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곰팡이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커피 녹병은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했다. 발병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고, 전염병이 생기더라도 이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마는 다르다고 말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커피 곰팡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인간의 전염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고적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가장 크게 위협해온 것은 전쟁도 기아도 아닌 바이러스라는 미생물이다. 일상적인 감기부터 천연두, 신종플루, 에이즈, 그리고 최근 우리 생활의 양태까지 바꾸고 있는 코로나19까지 모두 바이러스라는 미생물이 원인이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인 것처럼 곰팡이는 커피나무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이다. 바이러스나 곰팡이 모두 숙주 세포에 침투해 복제되고 결국은 숙주를 파괴하면서 증식해 커다란 재앙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어렵게 특정 바이러스나 곰팡이를 극복하더라도 또다시 미지의 미생물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유사한 특징도 갖는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 새로운 돌연변이 병원체가 계속 발생하는 데는 생태계 파괴나 기후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결국 인류는 대응해갈 뿐이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어 대응하듯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새로운 곰팡이와의 지난한 싸움에 대응한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려움은 극복되고 질병은 종식된다. 그렇게 인류와 커피는 지금까지 생존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도전과 응전을 거치며 조금씩 더 진화해 갈 것이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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