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라면 가져야 할 책임감으로 달려왔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어요. 환자, 의사, 간호사, 대구시민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로 뭉치면 분명 이겨낼 겁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신종 코로나 치료 거점병원인 대구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미르(21ㆍ서울 강동구 거주)씨. 그는 이전만 해도 여행이 좋아 6개월 동안 울릉도에서 지내고, 소방관을 꿈꿔온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랬던 이씨가 신종 코로나 대유행으로 위기에 빠진 대구로 내려와 병원의 온갖 잡일을 도맡기로 한 계기는 별다르지 않다.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이게 시작이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성인이 됐으니 (그들처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곧바로 대구로 왔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이씨는 보건복지부에 자원봉사를 신청했지만 연락이 없자, 동산병원에 전화를 걸어 지금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평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대구에 달려왔습니다. 부모님도 ‘이왕 마음을 먹었으면 대구에 가서 제대로 봉사를 하고 오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신종 코로나 중증환자 등 332명(10일 기준)이 격리 치료를 받고 있는 이곳 동산병원에서 이씨의 역할은 ‘간호사 보조’. 전문적인 의학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일반인이라 주사나 약을 처방할 수 없지만 환자들의 혈압,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하고, 도시락을 환자들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쓰레기 처리도 그의 담당이다.
11일 그가 전한 대구의 분위기는 급박했다. 이씨는 지난 5일 병원 중환자실에서 42번째 사망자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했다. “환자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어 왔는데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사망했습니다. 의료진이 사망선고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그는 의료진, 특히 가장 가까이서 환자들을 책임지는 간호사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이 레벨(Level)D 보호복과 N95 마스크 등을 종일 착용하고 확진자들을 돌보는데 인력이 부족해 너무 힘들어합니다. 저처럼 20대인 간호사들이 병동에 투입돼 사투를 벌이고 있어 그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어요.”
그래도 이씨는 조금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자원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들어오는 환자만 가득했지만, 이제 병동과 생활치료센터에서 확진자들이 퇴원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서다. “조금만 더 버티면 ‘지긋지긋한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창문도 열지 못하고 병실에 갇혀 신종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환자들이 완쾌해 병원문을 나설 때마다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이씨는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가 소멸될 때까지 병원 자원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자원봉사가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남아 확진자들을 돌보겠습니다. 그들을 돕는 게 바로 나를 돕는 일이니까요.”
이씨는 자원봉사 활동이 끝나면 오랜 꿈인 소방관이 되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역행사에서 소방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마음을 먹었어요. 타인의 안전을 지키고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소방관을 꿈꾸게 됐어요.” 그는 언론이 대구 상황을 놓고 ‘좋아지고 있다’고 전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전쟁터”라고 강조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구를 위해 달려올 자원봉사자들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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